[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엎드림/지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엎드림/지연

입력 2022-06-16 20:32
수정 2022-06-17 03:1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엎드림/지연

비 그치고

새 소리는 실 한 줄
꽃잎이 열리는 소리는 실 네 줄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리 매듭을 만들며 날아간다

바람이 솔잎 살갗으로 건너올 때
나는 몇 줄로 이 세상에 수를 놓고 있나

아무 색도 없이
방범창에 방울방울
그믐 숨소리로 흔들린다

실패에 감긴 실의 후회는 아무것도 아니리
살아 있는 순간은 아름다움을 내 귀에 꽂은 날이니

구름 솜에 꽂힌 녹슨 바늘이어도 좋다
오늘은 추리닝을 입고 물방울을 바라볼 일

산동네 골목 마을 입구에서 작은 책방을 보았다. 며칠 전까지 보지 못한 책방이다. A4 크기의 나무판에 ‘취미는 독서’라는 상호가 적혀 있다. 두 평 남짓 서가에 신간 시집과 그림책들이 놓여 있다. 도라지꽃을 닮은 주인에게 어떻게 이런 곳에 서점을 낼 생각을 했느냐 물었다. 그가 피식 웃었다. 사흘 뒤 다시 서점에 들렀다. 개업 후 다섯 권은 팔았느냐는 질문에 영업비밀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살아 있는 순간은 아름다움을 내 귀에 꽂은 날’이라는 아름다운 시 구절이 들어 있는 시집을 ‘취미는 독서’에서 구했다. 세상에는 꿈만 먹으며 낮게 엎드려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곽재구 시인
2022-06-17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새벽배송 금지’ 제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새벽 배송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민생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1.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
2.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