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5㎝’/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5㎝’/박건승 논설위원

박건승 기자
입력 2018-04-27 23:00
수정 2018-04-2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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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은 원래 ‘널문리’였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개성으로 도피했다가 다시 평양으로 간다. 그때 백성들이 대문으로 만들어 준 임시 다리로 강을 건넜다고 해서 ‘널문리’로 불렸다. 360여년이 흘러 한국전쟁 당시 휴전회담이 ‘널문리 주막’ 앞에서 진행됐는데, 이것을 중국 측이 읽을 수 있게 한자어로 바꾼 게 ‘판문점’(板門店)이다.
애초 판문점은 남북이 유일하게 경계선 없이 공존하던 공동경비구역(JSA)이었다. JSA는 1951년 정전협정 논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평범한 시골 벌판 한 자락에 불과했다. 1976년 ‘8·18 도끼만행 사건’을 계기로 군사분계선(MDL)이 생겨났다. 판문점 북측 지역과 남측 지역에 걸친 이른바 ‘T2-T3’ 사잇길에 군사분계선이 있다. 여기에서 ‘T’는 언젠가는 사라질 임시 건물(Temporary)이라는 뜻이다. T2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T3는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이다. ‘T’는 한국전쟁과 휴전, 분단을 상징하는 아픔이 깃든 곳이다. 판문점이나 T건물 어느 것 하나 담고 있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얼마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의 콘크리트 턱을 넘는 모습은 연말 ‘세계 10대 뉴스’로, 미국 타임지의 커버를 장식할지도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예측이 현실화할 공산이 매우 커졌다.

높이 5㎝, 너비 50㎝. 이 콘크리트 연석은 군사분계선 표시를 위해 군사정전위원회가 설치한 것이다. 5㎝ 높이 턱만 넘으면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단 한걸음에 가게 된다.

어제 남북 정상 만남은 이 콘크리트 턱을 사이에 두고 이뤄졌다. 그런 연후에 두 정상은 손 잡고 세 차례나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마치 아이들이 놀이하는 것처럼. 그들은 긴장한 듯하면서도 뺨에는 홍조가 올랐다. ‘그림 같은 평화’였다고나 할까. 마음만 먹으면 이리 쉬운 일인데 그 선을 넘는 데 11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불과 땅에서 검지 하나가 채 안 되는 정도의 높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높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벽이었다. 5㎝ 턱이 가른 남북 사이가 그렇게나 멀었으리라.

‘벽’을 넘나든 두 정상의 행보는 그들 개인에게는 작은 발걸음일 수 있다. 그러나 비핵화 이후 나중에 더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한 큰 걸음일 수 있다. 우리 자손들은 훗날 이 5㎝ 높이의 콘크리트 턱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만약에 통일의 그날이 온다면 5㎝ 턱의 흔적을 지워야 할지, 보존해야 할지를 두고 ‘행복한 논쟁’을 벌일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ksp@seoul.co.kr
2018-04-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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