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알못’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맥주를 아시나요? [지효준의 맥주탐험]

‘술알못’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맥주를 아시나요? [지효준의 맥주탐험]

류지영 기자
류지영 기자
입력 2022-10-08 20:47
수정 2022-10-08 23:0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15>美 금주법으로 태동해 ‘건강음주’ 흐름된 무알콜맥주
1920년대 미국서 주류 유통 금지하면서 무알콜 맥주 생겨나
금주법 폐지 뒤 사라졌다가 1970년대 무슬림 선물로 부활
코로나19 계기로 ‘맛과 건강’ 동시 추구 음주 문화 확산
개인 주량·취향 따라 ‘모두가 즐기는 술자리’에 도움 줘

한 수제맥주 양조장에서 탭을 통해 맥주를 내리고 있는 모습. PIXABAY 제공
한 수제맥주 양조장에서 탭을 통해 맥주를 내리고 있는 모습. PIXABAY 제공
맥주는 오래 전부터 인간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잡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교류의 중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도수는 낮아도 맥주 역시 술이다. 건강을 위해 음주량을 조절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도 책임감 있는 음주 문화와 지속 가능한 음주 습관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자연스레 맥주 시장에서도 건강이라는 키워드를 중요시하는 소비 문화가 퍼지고 있다. 다른 제품들과 다르게 온라인 구입이 가능하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무알콜 맥주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는 음식점과 대형 마트, 편의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을 만큼 정도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버드와이저를 만드는 엔하이저부시가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윈우드에 만든 양조장 ‘베자 수르’(Veza Sur)에서 주민들이 크래프트 비어를 즐기고 있다. 지효준
버드와이저를 만드는 엔하이저부시가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윈우드에 만든 양조장 ‘베자 수르’(Veza Sur)에서 주민들이 크래프트 비어를 즐기고 있다. 지효준
아이러니하게도 무알콜 맥주는 술을 마시고 싶은 인간에 욕망에서 탄생했다.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제품들은 대부분 미국 금주법의 영향을 받았다. 금주법은 1920년 미국에서 시행됐는데,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술 마시는 것을 규제했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곡물 부족 현상을 완화하려는 취지였다지만 ‘취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지상명령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노동자들의 과도한 음주로 인한 생산성 저하에 골머리를 앓던 자본가들이 전폭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방하면서 ‘사회 보수화’의 신호탄이 됐다. 독일인들이 주도하던 맥주산업을 고사시키는 속내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 법은 13년 만인 1933년에 폐지됐지만 미국을 넘어 세계 주류 시장 전반에 변화를 만들었다. 술을 못 만들게 된 양조장들은 냉장 유제품과 탄산수 등 대체품을 개발·판매했고 의료용 알콜을 생산하기도 했다. ‘버드와이저’(Budweiser)를 만드는 엔하이저부시(Anheuser Busch)는 알콜 도수를 당시 법정 기준인 0.5% 이하로 낮춘 니어 비어(Near Beer)를 판매했다. 일부 양조장은 소비자들이 무알콜맥주에 주입기로 알콜을 직접 주입해 마시는 니들 비어(Needle Beer)까지 내놓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미국 금주법 시행 당시 뉴욕에서 경찰이 적발한 밀조주를 찾아내 하수도에 쏟아 버리고 있다. 소후닷컴 캡처
미국 금주법 시행 당시 뉴욕에서 경찰이 적발한 밀조주를 찾아내 하수도에 쏟아 버리고 있다. 소후닷컴 캡처
금주법이 사라지면서 니어 비어 제품들은 맥주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맛이 없는 맥주’, ‘어쩔 수 없이 마시는 맥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1970년대 미 텍사스의 사업가 매니 젤저는 종교적으로 음주가 허용되지 않는 중동 지역 사업 파트너들을 위해 무알콜 맥주를 직접 만들어 선물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지금도 판매되는 ‘텍사스셀렉트’(Texas Select)다. 이때부터 무알콜 맥주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90년대에는 오둘스(O‘douls)가 미 무알콜 맥주 대중화를 알렸고, 수제맥수 양조 기술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우리나라는 주세법상 알콜 도수 1% 이상은 술로, 1% 이하는 음료로 정의한다. 알콜이 전혀 없으면 ‘무알콜 맥주’, 0~1% 사이면 ‘비알콜 맥주’로 분류된다.   

요즘은 ‘위드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비자들이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제품을 찾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이에 부응해 수많은 양조장들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무알콜 맥주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벨기에의 ‘브뤼셀 비어 프로젝트’(Brussels Beer Project)에서 만드는 피코 벨로(Pico Bello), 영국 ‘빅드롭’(BIG DROP BREWING)의 밀크 스타우트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양조장들이 뛰어난 맛과 향을 지닌 무알콜 맥주를 선보이면서 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벨기에의 ‘브뤼셀 비어 프로젝트’(Brussels Beer Project)에서 만드는 무알콜 맥주 피코 벨로(Pico Bello). 지효준
벨기에의 ‘브뤼셀 비어 프로젝트’(Brussels Beer Project)에서 만드는 무알콜 맥주 피코 벨로(Pico Bello). 지효준
세계 맥주 시장에서 무알콜 맥주는 아직 ‘주류’(主流)가 아니다. 그러나 양조 및 유통·보관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장 크게 주목받는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맥주에 알콜이 없는데도 맛이 좋다는 것은 건강 음주·개성 음주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에 큰 이점이다. 앞으로 전체 맥주 시장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맥주는 알콜이 들어간 발효 제품이기에 술에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이는 아무리 맥주를 마셔도 취하지 않지만, 다른 이는 맥주를 한 모금만 마셔도 취기가 오른다. 그래서 필자는 무알콜 맥주의 발전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언젠가 대한민국에서도 각기 다른 주량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춰 맥주를 골라 마시며 함께 즐기는 미래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영국 양조장 ‘빅드롭’(BIG DROP BREWING)이 내놓은 무알콜 맥주 ‘밀크 스타우트’. 지효준
영국 양조장 ‘빅드롭’(BIG DROP BREWING)이 내놓은 무알콜 맥주 ‘밀크 스타우트’. 지효준
지효준은: 1995년생. 중국 베이징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맥주의 맛 뒤에 숨겨진 경제와 사회, 문화의 매력을 발견하고 각국을 돌며 ‘세상의 모든 맥주’를 시음·분석·정리하고 있다. ‘글로벌 맥주 플랫폼’을 꿈꾸며 다양한 사업도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 맥주가 ‘폭탄주’ 용도로만 쓰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크다. 맥주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는데 젊음을 건 ‘맥덕’이다.
지효준은: 1995년생. 중국 베이징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맥주의 맛 뒤에 숨겨진 경제와 사회, 문화의 매력을 발견하고 각국을 돌며 ‘세상의 모든 맥주’를 시음·분석·정리하고 있다. ‘글로벌 맥주 플랫폼’을 꿈꾸며 다양한 사업도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 맥주가 ‘폭탄주’ 용도로만 쓰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크다. 맥주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는데 젊음을 건 ‘맥덕’이다.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투표
트럼프 당선...한국에는 득 혹은 실 ?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뒤엎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 됐습니다. 트럼프의 당선이 한국에게 득이 될 것인지 실이 될 것인지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득이 많다
실이 많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