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에 폭탄투척’ 이봉창 의사 순국 전 사진 발견

‘일왕에 폭탄투척’ 이봉창 의사 순국 전 사진 발견

입력 2014-10-03 00:00
수정 2014-10-03 14:5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1932년 일제 침략에 항거하고자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李奉昌, 1900~1932) 의사의 순국 전 사진이 새로 발견됐다.

이미지 확대
’일왕에 폭탄투척’ 이봉창 의사 순국 전 사진 발견
’일왕에 폭탄투척’ 이봉창 의사 순국 전 사진 발견 1932년 일제 침략에 항거하고자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李奉昌, 1900~1932) 의사의 순국 전 사진이 새로 발견됐다. 윤주 매헌기념관장은 이 의사 관련 자료 수집 과정에서 1932년 9월30일자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실린 이 의사의 사진을 발견했다며 3일 이를 공개했다. 이 의사는 1932년 1월8일 일본 도쿄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히로히토(裕仁) 일왕 일행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맞히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돼 그해 10월10일 사형당했다.
연합뉴스
윤주 매헌기념관장은 이 의사 관련 자료 수집 과정에서 1932년 9월30일자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실린 이 의사의 사진을 발견했다며 3일 이를 공개했다.

이 의사는 1932년 1월8일 일본 도쿄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히로히토(裕仁) 일왕 일행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맞히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는 도쿄 도요다마(豊多摩) 형무소로 옮겨져 심문과 예심을 받은 뒤 해당 사진이 보도된 그해 9월30일 도쿄 대심원(大審院)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이 의사의 오른쪽 옆모습으로, 구금된 이후 장기간 고초를 겪은 탓인지 볼에 살이 없이 광대뼈가 도드라진 상태를 볼 수 있다.

사진 오른쪽에는 ‘대역범인 이봉창(위) 그의 생가(오른쪽 아래)와 도쿄의 숙박부에서 확인한 필적’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이 의사는 사진이 보도되고서 열흘 후인 그해 10월10일 이치가야(市谷)형무소에서 32세로 순국했다. 순국 당시 미혼이었던 그의 유해는 1946년 5월15일 국내로 봉환돼 7월6일 국민장으로 효창원에 안장됐다.

사진을 공개한 윤 관장은 이 의사의 의거가 항일 독립투쟁 전선에 큰 활력을 불어 넣었다는 의미가 있으나 공로보다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며 격에 맞는 기념사업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관장은 “이 의사의 의거는 윤봉길·안중근 의거와 함께 3대 의열투쟁으로 꼽히지만 윤봉길·안중근 의사가 건국훈장 1등급을 받은 반면 이 의사는 2등급”이라며 “이 의사의 훈장을 1등급으로 올리고 생가를 복원하는 등 의거의 격에 맞는 기념사업 추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새벽배송 금지’ 제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새벽 배송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민생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1.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
2.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