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사랑은 공평한 것…이제 아내에게 돌려줄 차례”

박범신 “사랑은 공평한 것…이제 아내에게 돌려줄 차례”

입력 2015-10-22 20:01
수정 2015-10-2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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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번째 장편 ‘당신 - 꽃잎보다 붉던’ 출간

소설가 박범신(69)이 42번째 장편소설 ‘당신 - 꽃잎보다 붉던’(문학동네)으로 돌아왔다.

책은 치매에 걸린 노부부가 함께 죽어가는 이야기다. 한평생을 부인 윤희옥과 딸아이 주인혜에게 헌신하면서 산 가장 주호백은 두 차례 뇌출혈을 겪고 치매에 걸리면서 인생 말년을 맞이하게 된다.

주호백의 몸과 정신이 점점 통제 불가능하게 변하면서 그로서는 밝히고 싶지 않았던 한평생의 인내, 헌신, 사랑의 이면이 조금씩 드러난다. 윤희옥은 자신이 평생 받아온 사랑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그 사랑을 돌려준다.

22일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 상상마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난 장인이 보여준 모습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장인어른의 증상 하나가 자꾸 남들 자는 밤에 소리를 지르는 거였어요. 온 식구들이 잠을 못 이루게 큰 소리로 뭐라고 말을 하시더라고요. 치매로 정신이 없는 게 아니라 제정신인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억제하고 사신 분인데, 사실은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았던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최백호의 노래 ‘길 위에서’를 듣고 이 소설이 순간적으로 구상됐다”며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자가 말년에 치매에 걸려서 젊을 때로 돌아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죽는다는 설정을 하니 플롯이 바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 이름은 ‘호백’이라고 지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남편의 거친 모습에 부인 윤희옥은 잊으려 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복기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2015년에서 시작하고서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간다. 10대의 주호백과 윤희옥이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이후 두 사람이 거친 인생의 굴곡을 짚어가면서 윤희옥은 남편의 진짜 모습을 다시 마주한다. 그 사이 윤희옥도 조금씩 삶의 끝을 향해간다.

“그는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하나의 인격은 자애와 헌신과 인내로 시종한 관용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의 인격은 상처와 분노와 슬픔 등 보편적 희로애락을 날것으로 갖고 있는 얼굴이다. 거의 평생 나와 인혜에게 그는 첫 번째 인격으로 대응했으며, 이 방에 들어와 혼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두 번째 인격의 실체와 맞닥뜨리거나 그것의 해방을 경험했을 터이다. (중략) 치매가 깊어진 다음 그가 보여준 그 본능적 반응들. 이 방에 간직된 것들은 그러므로 그가 환자가 되기 전 한사코 감춰온 그의 이면에 대한 생생한 증거들이다.”(258쪽)

작가는 “책에는 아내나 자식, 고인이 된 부모님 등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무나 사랑했지만 과오도 많았던 사람들에 대한 나의 회한과 성찰, 반성 이런 것들이 담겨 있다”며 “죽음이나 존재론적인 한계가 아니라 ‘순애보’를 생각하며 썼다”고 털어놨다.

특히 매일 늦게 귀가하고, 사랑이 지속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무심한 남편이었던 작가는 “아내하고 나하고 지금까지 불공평했던 걸 조금씩이라도 갚아나가고 싶다”며 “소설 속 주호백은 마누라고, 윤희옥이 나”라고 웃었다.

그는 책 서문을 대신해 넣은 ‘헌사’에 이렇게 썼다.

“사랑의 지속을 믿지 않는 남자 곁에서 그것의 영원성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오랜 당신, 독자들에게 진솔하게 허락을 구하면서, 나이 일흔에 쓴 이 소설을 부끄럽지만 나의 ‘당신’에게 주느니, 부디 순하고 기쁘게 받아주길!”

작가는 “’은교’는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이적요가 죽음을 앞두고 짝사랑을 통해서 자기 죽음에 대한 반항을 일으키는 이야기”라며 “이번 작품은 두 주인공을 공평하게 다루려고 애썼고, 사랑이라고 하는 건 그렇게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70세에 맞춰 문학 인생을 되돌아보는 의미로 7권 규모의 ‘박범신 중단편전집’도 선보였다. 박범신의 제자인 시인 박상수는 작가의 문학적 연대기를 정리한 책 ‘작가 이름, 박범신’을 펴냈다.

작가는 “지금까지 써온 것의 비문이나 감정 과잉을 잡았는데, 반성도 많이 되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겠더라”면서 “박범신의 세계관, 캐릭터, 당시 작품을 쓸 때 가진 생각이 지금도 변함없는 게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고 귀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어쩌면 차선의 선택을 항상 하면서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큰 후회로 남는다”며 “내년 여름쯤에는 세상과 관계를 정리하고 내가 정말 쓰고 싶은 단편,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다시 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10대 소년이 자신의 예술혼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쓴 ‘더러운 책상’의 속편을 쓰고 싶고, 연작소설 ‘들길’을 완성하는 것이 숙제라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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