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스포츠 경기가 있다.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약 3주간에 걸쳐 사이클을 타고 프랑스를 일주하는 대회다. 해마다 7월에 열린다. 하루에 한 구간씩 모두 3000~4000㎞를 달린다.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악 코스가 가장 어려운 구간.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린다. 모든 구간을 가장 짧은 시간에 주파한 선수가 영광의 노란색 상의를 입는다. 투르 드 프랑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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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20대 초반 사이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실력을 뽐내던 찰나 고환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한쪽 고환을 떼어냈다. 암이 머리까지 번져 뇌 조직 일부도 떼어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일상생활도 힘들었을 터. 그는 3년 만에 선수로 복귀해 그 어렵다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1999년부터 7년을 내리 우승하는 기적을 쓴다. 암 환자를 돕는 재단까지 만든다. 단순한 스타를 뛰어넘어 인간 승리와 인간애의 표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약물로 얼룩진 신화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다.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이다.
28일 개봉하는 ‘챔피언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안긴 암스트롱의 약물 스캔들을 집중 조명한다. 사이클 선수로서 살리에리 같은 재능은 있었으나 모차르트 같은 천재성은 없었던 암스트롱이 약물의 힘을 빌리고, 또 스포츠 비즈니스를 통해 영웅으로 포장돼 가는 과정을 면밀하게 해부한다.
미국 스포츠 스타 이야기지만 영국(워킹타이틀)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유럽인 입장에선 자신들이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투르 드 프랑스에 관한 영화가 미국적인 관점에서 빚어지는 게 용납되지 않았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카메라는 투르 드 프랑스의 세계화를 견인하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깊은 생채기를 낸 암스트롱을 냉랭한 시선으로 좇는다. 대회 부분은 유려하고 역동적인 영상미를 뽐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느낌이다.
영화는 암스트롱을 위한 어떠한 변명도 해 주지 않는다. 약물을 선택하기까지 고민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나 혼자 한 게 아니다. 모두가 도핑을 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고 되뇌는 장면에서는 파렴치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팀 전체의 도핑을 교묘하게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호스티지’ ‘엑스맨-최후의 전쟁’ ‘3:10 투 유마’ ‘론 서바이버’ 등의 조연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벤 포스터가 두 얼굴을 지닌 스포츠 스타 역할을 연기했다. 연출은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등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거장 반열에 오른 스티븐 프리어스가 맡았다. 104분. 12세 이상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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