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려시대 궁궐터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추정 금속활자 한 점은 출처가 명확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증도가자나 남북이 한 점씩 소장하고 있는 기존 고려 금속활자는 출처가 불분명해 논란에 휩싸여 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1956년 6·25 전쟁 중 파괴된 개성 만월대 유적을 보수 정비하는 과정에서 신봉문 서쪽 300m 지점에서 ‘方角頁’(전)자가 찍힌 금속활자 1점을 발견했다. 현재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 금속활자는 ‘山復(복)’자로, 1913년 이 왕가에서 일본인 상인으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출처는 개성 부근으로 전해진다. 협의회가 이번 금속활자를 공식 출토 활자로는 처음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활자의 크기는 가로 1.36㎝, 세로 1.3㎝, 높이 0.6㎝다. 글자 면을 제외한 몸체 두께는 0.16㎝다. 뒷면에는 세로 지름 0.93㎝, 가로 지름 1.08㎝의 홈이 파여 있다. 최광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은 “사진상으로는 ‘嫥’(전)의 형태와 유사하게 보이는데 우방 아래쪽의 자획이 方(방)자로도 보여 향후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활자는 잘 쓴 글자이고 서체는 1956년 만월대에서 출토된 활자와도 다르고, 증도가자와도 다르다”고 전했다. 최 위원장은 “증도가자와 직지심경은 불경 인쇄를 위해 사찰에서 만든 활자인 반면 이번에 발굴된 활자는 국가가 주도하여 만든 최고 수준의 활자라 볼 수 있다. 남북이 소장하고 있는 2개 활자와 비교했을 때 주조 모습이 두 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됐고 정교하다”고 덧붙였다.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은 “남북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 금속활자 두 점과 마찬가지로 홈 형태를 띠고 있어 고려 금속활자로 봐야 한다”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많이 소장돼 있는데 뒷면이 홈 형태로 가운데가 파여 있는 건 없다”고 설명했다.
과제는 남아 있다. 최 위원장은 “주조 시기가 언제인지 단정하는 건 아직 성급하다. 성분분석 등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북측에 남북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내년쯤 남북공동으로 학술회의를 개최하자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개성 만월대에서는 1956년 금속활자가 발견된 이후 추가적인 출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2007~2014년 조사에서는 짧은 발굴 기간 등의 한계로 찾아내지 못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최광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이 3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공동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금속활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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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앞면(왼쪽)과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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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의 크기는 가로 1.36㎝, 세로 1.3㎝, 높이 0.6㎝다. 글자 면을 제외한 몸체 두께는 0.16㎝다. 뒷면에는 세로 지름 0.93㎝, 가로 지름 1.08㎝의 홈이 파여 있다. 최광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은 “사진상으로는 ‘嫥’(전)의 형태와 유사하게 보이는데 우방 아래쪽의 자획이 方(방)자로도 보여 향후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활자는 잘 쓴 글자이고 서체는 1956년 만월대에서 출토된 활자와도 다르고, 증도가자와도 다르다”고 전했다. 최 위원장은 “증도가자와 직지심경은 불경 인쇄를 위해 사찰에서 만든 활자인 반면 이번에 발굴된 활자는 국가가 주도하여 만든 최고 수준의 활자라 볼 수 있다. 남북이 소장하고 있는 2개 활자와 비교했을 때 주조 모습이 두 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됐고 정교하다”고 덧붙였다.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은 “남북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 금속활자 두 점과 마찬가지로 홈 형태를 띠고 있어 고려 금속활자로 봐야 한다”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많이 소장돼 있는데 뒷면이 홈 형태로 가운데가 파여 있는 건 없다”고 설명했다.
과제는 남아 있다. 최 위원장은 “주조 시기가 언제인지 단정하는 건 아직 성급하다. 성분분석 등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북측에 남북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내년쯤 남북공동으로 학술회의를 개최하자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개성 만월대에서는 1956년 금속활자가 발견된 이후 추가적인 출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2007~2014년 조사에서는 짧은 발굴 기간 등의 한계로 찾아내지 못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