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용 개인전 ‘런 도넛 런’

학고재 제공

김재용 작가가 도넛을 주제로 한 도자 작품이자 자신의 대표작인 ‘도넛 페인팅 시리즈’ 앞에 서 있다. 적록색약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국제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김 작가는 각각의 도넛마다 사연이 담겨 있으며 전시할 때마다 도넛의 배치에 진을 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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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은 바쁜 현대인의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자 빈자의 음식이다. 간편하게 열량을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세계 대공황 시기 실업자와 빈민층에게 구호식으로 나눠줬던 음식이 바로 도넛과 커피였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는 도넛을 주제로 독특한 도자와 조각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김재용(52) 작가의 개인전 ‘런 도넛 런’을 열고 있다. 밀가루가 아닌 흙으로 빚어낸 그의 도넛은 발랄하고 화려하지만 따뜻한 정서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적록색약’ 딛고 빚어낸 유쾌함
전시 현장에서 만난 김 작가는 “적록색약이라 어린 시절 그림 그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며 “대학은커녕 미술학원 세 곳에서 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미국에서 조각과 도자를 전공했지만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할까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다. 작업실에 평소 좋아하던 도넛을 빚어 벽에 걸어 두고 자신을 위로했는데 작업실에 들른 갤러리 관계자들이 그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며 도넛을 주제로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노란 도넛이 어디론가 뛰어가는 듯한 전시명과 같은 제목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우리 떡에 고물이 있다면 서양의 도넛 위에는 스프링클이 있다. 노란 도넛 옆으로 흩날리고 있는 빨강, 파랑, 분홍의 스프링클은 마치 땀방울처럼 보인다. 뛰는 도넛을 따라 들어가면 다양한 도넛의 세계가 펼쳐진다.
구멍이 뚫린 원 모양, 하트, 곰, 악마 모양 도넛 위에서 화려한 스프링클의 세계가 구현된다. 갤러리의 가장 깊숙한 공간에 들어서면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도넛 페인팅 시리즈’가 전시돼 있다. 사람 얼굴보다 큰 95개의 도넛이 빼곡히 걸렸다. 도자기 혹은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들어진 도넛 면을 갈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색과 장식을 한다. ‘색약검사지’에서 착안한 작품부터 한국의 민화적 요소, 서양 신화 속 유니콘, 중동의 아라베스크 문양을 넣은 작품까지 다양하다.


●도넛마다 다른 문양·색채의 조화
김 작가는 “유약 같은 것은 가마에서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에 제 약점들이 가려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도자기 면을 캔버스 삼아 그리는 건 너무 현실적이었다”며 “첫 작업물이 나오기까지 1년이 걸렸을 정도로 엄청난 실패를 거쳐 완성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어떻게 하면 도자기에서 달콤한 느낌을 낼 수 있을까’라는 그의 고민이 각각의 도넛에 반영돼 있다. 각 도넛이 가진 개별적인 문양과 색채는 조화를 이루면서도 개성을 발산한다.행과 열을 맞춰 제각각 반짝이는 도넛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달콤함과 안락함에 위안을 받게 된다.
“달콤한 음식을 마구 먹는 게 아니라 걸어 놓고 꿈처럼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바라보고 별처럼 쫓아가자는 생각에 여러 도넛을 만들었어요. 모두의 인생이 달콤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다음달 5일까지.
2025-03-0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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