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으로 간 최인호의 ‘민낯’을 읽는다

천상으로 간 최인호의 ‘민낯’을 읽는다

입력 2013-12-26 00:00
수정 201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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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집 ‘눈물’ 발간

‘주님은 5년 동안 저를 이곳까지 데리고 오셨습니다. 오묘하게. 그러니 저를 죽음의 독침 손에 허락하시진 않으실 것입니다. 제게 글을 더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시어 몇 년 뒤에 제가 수십 배, 수백 배로 이자를 붙여 갚아 주기를 바라실 것입니다.’(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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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작가.
최인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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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작가의 육필 원고와 그가 아껴 쓰던 만년필.
최인호 작가의 육필 원고와 그가 아껴 쓰던 만년필.
2008년 여름 침샘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는 와중에도 ‘글을 더 쓸 수 있는 달란트를 달라’고 신에게 갈구했던 고 최인호 작가. 지난 9월 25일 홀연히 ‘별들의 고향’으로 떠난 그의 마지막 독백이 책으로 엮여 나왔다. 최인호 유고집 ‘눈물’(여백)이다.

책의 주요 뼈대를 이룬 것은 작가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미공개 육필 원고 200매다.

그가 떠난 집필실 책더미에서 부인 황정숙씨가 우연히 발견한 것들이다.

유고집에서는 문단의 거인 최인호가 아닌 인간 최인호의 맨 얼굴이 읽힌다.

작가가 스스로 ‘고통의 축제’라고 이름 붙였던 투병 기간에 새롭게 바라보게 된 삶과 죽음, 인간의 아름다움, 고독과 고통에 대한 인식이 깊고 내밀한 우물처럼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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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작가가 탁상에 흘린 눈물 자국.
최인호 작가가 탁상에 흘린 눈물 자국.
‘오늘 자세히 탁상을 들여다보니 최근에 흘린 두 방울의 눈물 자국이 마치 애기 발자국처럼 나란히 찍혀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가장자리가 별처럼 빛이 난다는 겁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알코올 솜을 가져다 눈물 자국을 닦았습니다. 눈물로 탁상의 옻칠을 지울 만큼 저의 기도가 절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탐스러운 포도송이 모양으로 흘러내린 탁상 겉면의 눈물 자국도 제게는 너무나 과분했기 때문입니다.’(13쪽)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이별을 준비하는 작가의 음성은 그가 이승에서 띄우는 마지막 편지로 읽힌다.

‘그러나 사랑하는 벗이여.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억지로, 강제로 내 생명을 연장시키려 노력하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2013.1.1. 잠들려 하기 전.’(263쪽)

작가가 동갑내기 친구인 이해인 수녀에게 부친 편지들도 처음 공개됐다. 편지에서 그는 “몸이 조금 회복되니 갖은 내 심신의 뿌리인 악의 어둠이 서서히 나를 유혹한다”며 “8㎏이 줄어 완전히 물레를 돌리는 간디의 모습이 됐다”고 전한다.

고인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추모 글, 편지 등도 함께 실렸다. 작가와 절친한 형과 아우로 지냈던 배우 안성기,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내 온 이장호 감독뿐 아니라 정호승 시인, 하성란·조경란·김연수 작가 등 후배 문인들이 고인과의 추억을 되돌아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3-12-2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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