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다른 나 심장에 대한 연민은 노년에 깨달은 삶의 선물

내 안의 또다른 나 심장에 대한 연민은 노년에 깨달은 삶의 선물

입력 2014-05-29 00:00
수정 2014-05-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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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아프다’로 김달진문학상 수상한 시인 김남조

“오늘 나는 생산이 줄어든 노년기 문인이면서, 그러나 여기에도 생의 오묘함과 은혜로움이 넘치고 있다는 그런 신념에 젖어 있다.”
지난해 발표한 시집 ‘심장이 아프다’로 김달진문학상과 한국가톨릭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한 김남조 시인은 “남은 날이 많지 않을 때 갖게 되는 겸손한 연민이 (내게) 있다”며 “그 연민이 만물을 향해 열리고 그것의 살결을 어루만지게 한다”고 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지난해 발표한 시집 ‘심장이 아프다’로 김달진문학상과 한국가톨릭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한 김남조 시인은 “남은 날이 많지 않을 때 갖게 되는 겸손한 연민이 (내게) 있다”며 “그 연민이 만물을 향해 열리고 그것의 살결을 어루만지게 한다”고 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김남조(87) 시인은 스스로를 ‘노년기 문인’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시인의 최근 행보는 이를 간단히 부정한다. 첫 시집 ‘목숨’(1953) 출간 60주년인 지난해 펴낸 ‘심장이 아프다’가 제25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제자·후배 문인들은 고갈을 모르는 그의 감수성과 창작열을 동경한다.

28일 서울의 한 찻집에서 만난 시인은 “지금에야 들리는, 소리를 낮춘 밀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오래된 풍금이 처음의 낭랑함은 잃어도 낡으면서 깊어지듯, 노년에 이르러 느끼는 감도(感度)는 더 깊고 간절하다는 시인의 고백이 낮게 울렸다.

“고음보다는 저음, 땡볕보다는 으스름한 조명이 좋죠. 젊은이들은 배낭을 메고 천하를 누비지만 노인들은 한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요. 그때 피부를 뚫고 뼈에까지 닿는 볕을 느끼는 감도, 감동은 적은 게 아닙니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줄어들지 않는 감동의 분량이 있어서 늙어선 늙은 나름으로 가슴 안에 끌어모으는 것이 있지요. 삶의 은혜, 삶의 선물이랄까요.”

수상 시집 ‘심장이 아프다’는 실제 심장의 아픔이 낳은 시편들이다. 지난해부터 심장 질환으로 호흡 곤란 등을 겪은 그는 불과 한 달 전에도 대동맥 판막 협착증으로 20여일을 꼬박 병원에서 누워 지냈다. 때론 심장 박동이 멎기도 했지만 현재는 호전돼 회복 중이다.

“이 나이로서는 상당히 심각하고 어려운 터널을 지나왔다”면서도 시인은 “자칫하면 못 읽고 지나갈 뻔했던 삶의 교과서를 읽는 게 참으로 좋았다”며 엷은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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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시인이 시집 표지를 열어 작가의 말을 쓰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김 시인이 시집 표지를 열어 작가의 말을 쓰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내 심장은 식민지 시절부터 80여년의 생애를 지탱해 오면서 과로했고 이번 시집을 쓰면서도 내내 감정이 가동된 상태라 너덜너덜 소모됐습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인 심장이란 존재에 대한 연민과 측은함으로 시를 써내려 갔어요. 최신 의학으로 육체가 치유되면서 내면의 창문이 더 많이 열렸어요. 깊이와 높이, 어둠과 빛, 기쁨과 슬픔 등 일생 동안 써 오던 언어의 뿌리까지 새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시집에서 시인은 시를 ‘혈서’에 비유하는가 하면, ‘절망적인 희망’이라고도 불러본다. 콩트나 산문으로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에게, 평생을 매달려온 시란 어떤 존재일까. 그는 “시는 내가 피할 수 없는 나의 진정한 적자”라는 간명한 답을 돌려줬다. 과거 그의 시에 담긴 정서가 다감하고 아름다웠다면, 현재의 시는 화려한 말을 뽑아낸 대신 웅숭깊은 진심과 서정을 담아낸다.

노시인은 시를 쓰는 이들이 일상의 거리 곳곳의 생활인들에게 은혜를 입은 존재임을 되새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길에 나가 보면 시인이 느끼는 이상으로 감성을 느끼되 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삶에는 역할이 나뉘기 때문에 그는 식당에서 일하더라도 그의 말, 그의 눈짓은 내게 하나의 촉매 작용으로 시로 다가옵니다. 나는 그가 주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그의 차를 타기도 하면서 그들의 말을 뜨개질처럼 짜서 그들의 몸에 다시 입혀 줍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운명으로 이어져 있어요.” 충만한 문학적 이력을 이어온 시인이지만 그 역시 뒤를 돌아볼 때가 있다. ‘내 문학은 심약하고 겁이 많았었구나’(버린 구절들의 노트) 하고 회고하면서.

“작가가 문학 속에서 다 정직한 건 아니에요. 사랑에서도 어떤 부분은 가다듬고 외출복을 입혀 문밖에 내놓고 어떤 부분은 피투성이가 돼서 상처를 핥으며 가련한 동물처럼 뒹굴잖아요. 문학 역시 늘 전적인 진실, 정직을 담지는 못하고 햇볕에 내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나라한 것만이 문학의 바른 면은 아닐 테죠. 요즘은 초월성에 대한 기도, 극복의 미학을 이루는 것에 더 시선이 갑니다.”

김달진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시인에게 “부디 오래도록 선생만의 시적 연금술을 통해, 우리에게 한없는 위안과 감동을 주시라”고 당부했다. 시인은 겸허히 화답했다. “길지 않기에 더 소중한 노년에 깨닫는 삶의 선물, 그때라야만 듣는 낮은 목소리를 쓰고 싶다”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4-05-2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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