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브레인/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김아림 옮김/어크로스/380쪽/2만 2000원

서울신문 DB

한국에서는 지난 1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렸다.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것은 단순한 환경적 요인이 아닌 편협성과 경직성을 나타내는 뇌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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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연합뉴스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를 두고 ‘사기 대선’이라며 결과에 불복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의사당을 침탈해 폭동을 벌였다.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것은 단순한 환경적 요인이 아닌 편협성과 경직성을 나타내는 뇌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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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민주주의의 본산인 미국, 가장 짧은 시간에 민주화를 쟁취한 나라로 평가받았던 한국이 요즘 극우극단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20년대 들어서면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지구온난화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 등 물리적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증가하며 극단주의가 더 쉽게 확산된 면이 있다.
극단주의는 주변 환경의 영향일까, 아니면 개인의 타고난 성향일까.
이 책의 저자 레오르 즈미그로드 박사는 ‘뇌’에서 해답을 찾는다. 그동안 뇌신경과학 분야에서 이데올로기는 “왜 어떤 사람은 보수이고, 다른 사람은 진보인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정치적 태도와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봤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은 왜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빠져드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관계는 정치학보다는 과학적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책에서는 실험심리학, 인지과학, 뇌신경과학을 사용해 이데올로기라는 정치적 신념이 외부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단순한 사회적 산물이 아님을 제시한다.
흔히 “극과 극은 통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상적으로 양끝에 있는 극우와 극좌는 통할까. 저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극우와 극좌는 인지적으로 서로 비슷하다. 두 극단 모두 중립적이고 정치와 관계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머릿속 도식 체계를 새롭게 적응시키고 변화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의 해석, 즉 음모론을 꺼내 드는 것이다. 즈미그로드 박사는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두 극단주의는 편협성과 경직성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극단주의에 빠지기 쉬운 뇌가 있을까. 저자는 심리학자 엘제 프렌켈 브룬즈비크가 194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10~15세 남녀 어린이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답을 대신한다. 프렌켈 브룬즈비크 연구에 따르면 아직 정치적 신념을 형성하지는 않았지만 사고의 경직성을 드러내는 아이들은 성장한 후 극단주의에 빠지기 쉽다. 사고가 경직된 아이들일수록 혼란이나 격변, 재앙에 매료됐다. 이런 아이들은 겉으로는 질서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드러내지만 그 안에는 무질서에 대한 선망이나 집착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가장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전두엽 피질에서 도파민 수치가 낮고 대뇌피질의 정보를 받아 보상, 집행, 자기 조절과 운동 처리에 관여하는 핵심 영역인 선조체에서는 도파민 수치가 높은 경향을 보인다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이는 이데올로기를 바꾼다는 것이 단순히 의견을 바꾸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 수준에서 변화가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즈미그로드 박사는 “인간은 어떤 이념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강조한다. 신경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알수록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인간 본성에 맞서 비합리적 규칙과 권위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극단주의적 선동이 넘치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깨우는 바가 크다.
2025-04-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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