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1월호 ‘온돌의 맛’
하층민서 왕 침소에까지 퍼져
땔감 수급이 홍수 원인으로 지목
일제 “비위생 원인 온돌 없애라”
“이상저온 대응 전 세계적 현상”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을 데우는 온돌은 한국 고유의 난방 방식이다. 하층민의 난방 방식이었던 온돌은 조선 중기 이후 양반 사대부와 왕가에까지 확산됐다.
에듀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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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1월호에서는 ‘뜨끈뜨끈 온돌의 맛’이라는 주제로 우리 조상들이 한파를 이기기 위해 고안해 낸 전통 기술인 온돌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김소라 서울교대 교수는 ‘구들을 덥히자 청계천이 범람했다’라는 글을 통해 17세기 소빙하기를 맞은 조선시대에 왕의 침소에까지 온돌이 깔리면서 달라진 조선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았다.
땔나무로 쓰기 위해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 내다 보니 한양 주변의 산은 민둥산이 돼 폭우가 내릴 때마다 청계천이 범람하는 탓에 물난리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1964년 홍수로 청계천이 범람한 모습.
서울신문 DB
서울신문 DB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비숍 여사는 구한말 조선을 여행했을 때 온돌 난방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기행문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토로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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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소빙하기에는 이상저온현상과 함께 잦은 홍수도 발생했는데 헐벗은 산 때문에 비만 오면 청계천이 범람해 물난리를 겪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1885년 서울에는 하루 동안 392㎜의 비가 내린 적이 있다. 이 수치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청계천과 가장 먼 지점에도 40㎝ 이상 물이 차올랐고 청계천 변은 1m 이상 범람했다고 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들은 서울 도성을 더럽고 비위생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고 그 원인을 조선인의 게으른 천성과 인근에 나무가 없는 탓이라고 여겼으며 결국 이는 온돌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온돌을 없앨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는 조선인의 천성 때문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세기에 걸쳐 나타난 이상저온에 대응하기 위한 현상”이라고 했다.
2024-01-10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