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 정리

전화번호 정리

입력 2010-09-12 00:00
수정 2010-09-12 12:3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이참에 주소록을 싹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미지 확대
10년이 넘게 사용하는 동안 사람들의 전화번호도 많이 바뀌었고, 개중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있어 간만에 책상 정리하듯 깔끔하게 정돈을 하고 싶었지요.

전 직장동료, 선배, 후배, 동창, 거래처 등 그룹별로 한 명 두 명 묶어가다 보니 ‘아, 이 사람은 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 사람들과의 추억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삿짐 정리를 하다 말고 오래전 사진을 들쳐보는 그런 기분…. 그러다 문득 시간이 딱 멈추는 느낌이 들고, 가슴이 휑해지는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겠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친구 김형곤, 장영희 선생, 그리고 사랑했던 지인들…. 이젠 전화번호를 지워야 할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였습니다.

이 번호로 전화를 걸면 지금 당장 그들이 받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지요. 목소리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사람들을 저는 단 한 사람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차마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것마저 지운다면 나와 그 사람의 인연의 고리도 영원히 끊어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지요. 이번에 모처럼 시도한 전화번호 정리에는 실패했지만 한 가지 깊이 느낀 게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 훨훨 다 떨쳐버리고 떠날 때,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공수래공수거 인생이라지만, 저는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 저장된 추억들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발행인 김성구(song@isamtoh.com)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새벽배송 금지’ 제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새벽 배송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민생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1.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
2.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