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노스페이스

[영화리뷰] 노스페이스

입력 2010-05-28 00:00
수정 2010-05-2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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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성 조화이룬 등반영화 극적장면 없지만 손엔 땀이 난다

사실 등반 영화는 차고도 넘친다. ‘K2’(1991)를 비롯해 ‘얼라이브’(1993), ‘버티칼 리미트’(2000)….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가쁘다. 이들 영화는 등반 과정의 예기치 않은 위기를 전제하고 이를 극복하거나 실패해 죽는 과정을 주된 골격으로 삼는다. 감독 입장에서 이 틀을 벗어난 등반 영화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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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만 보면 독일영화 ‘노스페이스’도 이 골격 그대로다. 영화는 1936년 4명의 산악인이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 아이거 북벽 정복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는 비극적 실화를 다루고 있다. 당시 나치는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등반가들에게 북벽 등정을 부추긴다. 앤디(사진 왼쪽·플로리안 루카스)와 토니(오른쪽·벤노 퓨어만)도 다른 2명의 산악인과 함께 도전장을 내민다. 언론도 가세하며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기후와 장비의 문제로 4명은 모두 죽음에 이른다. 적어도 내용만 따지면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냄비 언론’을 비꼬았다는 점 외에는 특별히 신선할 건 없다.

하지만 대단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데 손을 들겠다. 장면 하나하나에 섬세한 리얼리즘이 와 닿는다. 일반적인 할리우드 등반 영화와는 선을 긋는다.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관객의 혼을 빼놓으며 관객의 감정 이입을 강요하지 않는다. 필립 슈톨츨 감독은 분장과 의상, 상황 등을 꼼꼼하게 고증해 당시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는 데 관심을 뒀다고 했다. 극적인 장면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기보다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접근하는 길을 택했다. 어쩌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실제 노스페이스는 당시 등반 일지와 남아 있는 사진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긴장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다소 음침한 분위기와 핸드헬드 카메라(사람이 직접 들고 촬영하는 카메라) 기법, 절제된 대화 방식에는 거친 재질감이 느껴진다. 관객은 이 지점에서 할리우드 등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아, 비싼 돈 들인 극적인 장면 없이도 이렇게 손에 땀을 쥐게 할 수 있구나.”라는.

이 때문에 121분의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대중성과 예술성이 너무나 잘 결합됐다. 감독의 말을 덧붙인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산악 영화처럼 보여선 안됐다. 인공적으로 무얼 만들거나 비장함을 강조하기보단 자연 그대로를 다루고 싶었다. 그게 전부다.” 전체 관람가. 새달 3일 개봉.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05-2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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