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고맙다”…회한의 자녀상봉

“미안하고 고맙다”…회한의 자녀상봉

입력 2014-02-21 00:00
수정 2014-02-21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60년 기다린 만남…치매·노환에 가족 기억 못 하기도

두 살배기였던 딸이 백발이 성성한 60대 노인이 돼 아흔 살이 넘은 아버지 앞에 섰다.

아버지는 평생을 미안해하고 그리워하던 딸을 앞에 두고 밀려드는 회한에 말을 잇지 못했다.

3년4개월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20일 오후 금강산호텔. 전쟁통에 헤어진 부모와 자식이 60여 년 만에 재회했다.

손기호(91) 할아버지는 딸 인복(61)씨와 외손자 우창기(41)씨를 만났다.

손 할아버지는 딸을 눈앞에 두고 말을 잇지 못한채 눈물만 흘렸다. 인복 씨는 “아버지,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며 울면서 아버지를 껴안았다.

손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부모님과 아내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딸은 외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다음에 데려올 계획이었지만 경비가 강화되면서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당시 딸은 두 살이었다.

손 할아버지는 “헤어질 때 마루까지 나와 손을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라며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박운형(93) 할아버지도 북한에 두고온 딸 명옥(68)씨와 동생 복운(75·여)·운화(79)씨를 만났다.

박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석 달이면 돌아갈 수 있겠지 하던 세월이 60년을 훌쩍 넘기게 됐다.

명옥 씨는 박 할아버지가 25살 되던 해 해방둥이로 낳은 딸이다. 헤어질 때 예닐곱살 소녀였던 딸은 이제 67살 할머니가 돼 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박 할아버지는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다”라며 “두 세상을 사는 기분”이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그는 딸과 동생들에게 “통일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라며 또 한 번의 기약없는 이별을 미리 준비했다.

강능환(93) 할아버지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들 정국(64)씨와 처음으로 만났다.

결혼한 지 4개월도 안 된 아내와 1·4 후퇴 때 헤어진 강 할아버지는 아들의 존재조차 모른 채 60여 년을 살았다. 그러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돼 생사확인을 거치면서 북한에 남긴 아내의 뱃속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하지만 상봉장에 마주선 아들과 아버지는 한눈에 봐도 영락없는 부자였다.

강 할아버지는 “한번 안아보자”라며 아들에게 다가갔다. 둘은 얼싸안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강 할아버지와 동행한 남쪽의 또 다른 아들은 이북의 형에게 “형님,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남쪽 아들은 북쪽 아들보다 키가 10cm는 더 컸고 덩치가 훨씬 좋았다. 하지만 두 형제는 서로 운동을 좋아한다며 피붙이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60년이라는 시간은 그토록 그리던 가족에 대한 기억마저도 지울 만큼 긴 것이었다.

몇몇 이산가족들은 치매 등 노환으로 가족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영환(90) 할아버지는 북녘에 두고 온 아내 김명옥(87) 씨와 아들 대성(65) 씨를 만났다. 이번 상봉단 82명 가운데 배우자를 만난 것은 김 할아버지가 유일하다.

김 할아버지는 6·25 때 인민군을 피해 혼자 남쪽으로 잠시 내려와 있다가 가족과 헤어졌다. 당시 아들 대성 씨는 5살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이후 남쪽에서 결혼해 4남1녀를 뒀다.

김 할아버지와 이번 상봉에 동행한 아들 세진(57) 씨는 “아버지는 북쪽 가족들에게 젊을 때 그렇게 헤어졌다는 미안함을 안고 살았다”라며 “가족들을 만나면 보고싶고 안아주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할아버지는 연로한 탓인지 아내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세진 씨는 “너무 오래돼서 약간 못 알아보신다”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추스렸다.

이영실(88) 할머니는 딸 동명숙(67) 씨와 동생 정실(85·여)씨를 만났다.

그러나 치매를 앓고 있는 이 할머니는 딸과 동생을 모두 알아보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전쟁통에 두 딸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남편과 잠시 남한으로 피난왔다가 휴전이 되는 바람에 예기치 않은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두 딸 중 맏이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명숙 씨는 이 할머니가 자신과 이모를 알아보지 못하자 “엄마, 이모야, 이모, 엄마 동생”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이 할머니의 계속 손을 잡고 귀엣말을 하며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했다. 정실 씨도 탄식과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이 할머니와 동행한 딸 동성숙씨는 어머니를 대신해 이모와 혈육의 정을 나눴다. 성숙씨는 “엄마가 오실 수 있을지 몰랐는데 엄마가 꼭 나와야 한다고 해서 왔다”라며 흐릿한 정신에도 북녘 가족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이 할머니의 마음을 전했다.

이 할머니는 평생을 북한에 두고온 딸들 생각에 명절 때면 몰래 숨어 울곤 했고, 이 할머니의 남편은 내내 애통해하다 4년 전 세상을 떴다.

이번 1차 상봉에서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북한에 있는 자녀와 만났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당신은 하루에 SNS와 OTT에 얼마나 시간을 소비하는가
우리 국민의 평균 수면 시간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도 크게 늘었다. 반면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의 이용자가 늘면서 미디어 이용 시간은 급증했다. 결국 SNS와 OTT를 때문에 평균수면시간도 줄었다는 분석이다. 당신은 하루에 SNS와 OTT에 얼마나 시간을 소비하는가?
1시간 미만
1시간~2시간
2시간 이상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