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타결된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사항 가운데 북측의 비무장지대 지뢰도발 유감 표명을 놓고 논란의 잔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북 간 합의사항 2항의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는 문구를 어떻게 볼 것이냐, 즉 사과로 볼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정부·여당과 야당 간에 반론이 맞부닥친 상황입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 문구가 사실상 북측이 자신들이 저지른 지뢰도발에 대해 우리 측에 사과를 표명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나흘 간의 협상을 타결지은 직후인 25일 오후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연수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 나가 “북측이 우리 대한민국 정부에게 북한을 주어로 해서 사과와 유감을 확실하게 표명한 첫 번째 사례”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도발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는 데 있어서 굉장히 의미있고 중요한 합의”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북한 주어로 한 첫 사과” vs 야당 “과장 해석”
이에 대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감 표명과 사과는 엄연히 다르다며 정부를 압박합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25일 국회에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한의 지뢰 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라는 합의문과 다른 발표를 했다. 합의 결과에 대한 왜곡일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지난 4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일어난 지뢰 폭발로 우리 군사 2명이 부상한 ‘상황’에 대해 북측이 유감을 표시한 것일 뿐, 문구 어디에도 자신들이 지뢰 도발을 자행했다거나 이에 대해 사과한다는 표현이 없는데도 이를 확대 내지 과장 해석해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데 김 실장의 25일 청와대 브리핑 내용을 보면 문 대표가 겨눈 ‘김 실장의 왜곡 발표’는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당시 김 실장은 협상이 길어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지뢰도발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북한이 주체가 되는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방지 받아내는 것을 바랐다. 협상이 대단히 길어졌고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나 재발방지가 되지 않으면 도발사태가 또 생기고 악순환 끊이지 않는다. 반면 북한이 원하는 것은 확성기 방송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재발방지와 연계시켜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붙임으로서 함축성 있는 목표 달성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북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문 대표의 지적도 타당한 대목이 있습니다. 합의 사항에 지뢰 도발의 주체로 북한이 적시되지 않은 점이 그렇습니다. 엄밀히 따져 합의사항 2항에 담긴 ‘북한은’은 유감 표명의 주체일 뿐, 지뢰 도발의 주체는 아닙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게 문구의 정확한 뜻입니다.
●사과냐 유감이냐 사이에 외교와 정치의 간극 존재
합의사항 2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즉 지뢰 도발에 대한 북측의 사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북측의 유감 표명으로 볼 것이냐에 외교와 정치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뜻의 사과와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 외교의 공용어인 영어로 풀어보면 그 차이는 한결 좁아집니다. 우리가 ‘유감’으로 해석하는 ‘regret’에는 후회, 애석, 안타까움 등의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사과’라는 구체적 행동까지는 나아가지 않더라도 ‘미안함’ ‘송구함’ 같은 감정적 상태만큼은 적극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반면 사과를 뜻하는 ‘apology’는 용서를 빈다는 보다 적극적 행위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복합적이고 다중적 의미의 수사(修辭·retoric)를 구사하는 외교 무대에서 ‘사과’(apology)라는 직접적 표현을 사용하는 예는 흔치 않습니다. 침략 전쟁이나 학살과 같은 명백한 범죄 행위가 아니면 대개 ‘유감’(regret)이라는 표현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이를 서로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 내지 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번 8·25 남북 고위급 합의에 대한 엇갈린 해석이나 평가는 어쩌면 ‘유감’이라는 외교적 수사가 지닌 모호성의 필연적 귀결일 수도 있을 겁니다.
●’북측’ ‘지뢰’ ‘유감’ 3개 키워드 담은 합의문은 적지 않은 성과
다만 분명한 것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승리로 갈 수는 없는 외교 협상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합의 문구의 사전적 의미 너머로 그 배경과 맥락을 함께 이해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즉, 북한이 지뢰 도발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합의문에 지뢰 도발을 언급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게 실질적으로 여의치 않다면 차선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북측·과 ’지뢰’ ‘유감’의 키워드를 끄집어내 합의문에 담은 것은 여야 정치권과 국민 다수가 평가하듯 적지 않은 성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정치입니다. 새정치연합은 북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과거 2002년 7월 제2연평해전 당시를 되돌아 본다면 그다지 할 말이 없을 듯 합니다. 김대중 정부 임기 마지막해이던 당시 북측은 제2연평해전 이후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대표의 통지문을 통해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고, 김대중 정부와 여당(새정치연합 전신 민주당)은 사실상 이를 북측의 사과로 받아들였습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야당의 처지가 됐다고 해서 ’유감’의 의미와 무게를 달리보는 것은 이래저래 설득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물론 반대의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나 보수진영은 북측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볼 수 없다며 정부를 맹비난했었습니다. 한 보수 언론은 ‘이것이 사과인가’라는 사설을 통해 “도저히 사과라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환영의 뜻을 밝히고 나선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고 열을 올렸습니다.
●국민 72% “북측 유감은 사과”...정치권은 여전히 민망한 공방중
북측의 유감 표명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은 결국 외교와 정치의 간극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국익이 충돌하는 외교 현안에 대해, 더구나 자칫 전면전으로까지 치달을 수도 있는 남북 간 무력 충돌 앞에서 외교를 정치적 잣대로 재단하는 일은 극히 신중해야 합니다.
하긴 이런 정치권의 행태를 미주알고주알 따질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25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에서 응답자의 72.1%가 북측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22.0%)를 크게 웃돕니다. 유감 표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응답자가 70.6%, 만족스럽다는 응답자가 23.5%인 걸 보면, 적어도 국민 3명 가운데 2명 이상은 북측의 유감 표명을 만족스럽진 않지만 사과로 본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런 여론 앞에서 사과니 아니니 하며 공박을 벌이는 정치권, 하루이틀도 아니지만 여전히 민망합니다.
진경호 편집국 부국장 jade@seoul.co.kr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 문구가 사실상 북측이 자신들이 저지른 지뢰도발에 대해 우리 측에 사과를 표명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나흘 간의 협상을 타결지은 직후인 25일 오후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연수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 나가 “북측이 우리 대한민국 정부에게 북한을 주어로 해서 사과와 유감을 확실하게 표명한 첫 번째 사례”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도발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는 데 있어서 굉장히 의미있고 중요한 합의”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북한 주어로 한 첫 사과” vs 야당 “과장 해석”
이에 대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감 표명과 사과는 엄연히 다르다며 정부를 압박합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25일 국회에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한의 지뢰 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라는 합의문과 다른 발표를 했다. 합의 결과에 대한 왜곡일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지난 4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일어난 지뢰 폭발로 우리 군사 2명이 부상한 ‘상황’에 대해 북측이 유감을 표시한 것일 뿐, 문구 어디에도 자신들이 지뢰 도발을 자행했다거나 이에 대해 사과한다는 표현이 없는데도 이를 확대 내지 과장 해석해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데 김 실장의 25일 청와대 브리핑 내용을 보면 문 대표가 겨눈 ‘김 실장의 왜곡 발표’는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당시 김 실장은 협상이 길어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지뢰도발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북한이 주체가 되는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방지 받아내는 것을 바랐다. 협상이 대단히 길어졌고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나 재발방지가 되지 않으면 도발사태가 또 생기고 악순환 끊이지 않는다. 반면 북한이 원하는 것은 확성기 방송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재발방지와 연계시켜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붙임으로서 함축성 있는 목표 달성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북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문 대표의 지적도 타당한 대목이 있습니다. 합의 사항에 지뢰 도발의 주체로 북한이 적시되지 않은 점이 그렇습니다. 엄밀히 따져 합의사항 2항에 담긴 ‘북한은’은 유감 표명의 주체일 뿐, 지뢰 도발의 주체는 아닙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게 문구의 정확한 뜻입니다.
●사과냐 유감이냐 사이에 외교와 정치의 간극 존재
합의사항 2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즉 지뢰 도발에 대한 북측의 사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북측의 유감 표명으로 볼 것이냐에 외교와 정치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뜻의 사과와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 외교의 공용어인 영어로 풀어보면 그 차이는 한결 좁아집니다. 우리가 ‘유감’으로 해석하는 ‘regret’에는 후회, 애석, 안타까움 등의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사과’라는 구체적 행동까지는 나아가지 않더라도 ‘미안함’ ‘송구함’ 같은 감정적 상태만큼은 적극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반면 사과를 뜻하는 ‘apology’는 용서를 빈다는 보다 적극적 행위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복합적이고 다중적 의미의 수사(修辭·retoric)를 구사하는 외교 무대에서 ‘사과’(apology)라는 직접적 표현을 사용하는 예는 흔치 않습니다. 침략 전쟁이나 학살과 같은 명백한 범죄 행위가 아니면 대개 ‘유감’(regret)이라는 표현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이를 서로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 내지 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번 8·25 남북 고위급 합의에 대한 엇갈린 해석이나 평가는 어쩌면 ‘유감’이라는 외교적 수사가 지닌 모호성의 필연적 귀결일 수도 있을 겁니다.
●’북측’ ‘지뢰’ ‘유감’ 3개 키워드 담은 합의문은 적지 않은 성과
다만 분명한 것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승리로 갈 수는 없는 외교 협상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합의 문구의 사전적 의미 너머로 그 배경과 맥락을 함께 이해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즉, 북한이 지뢰 도발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합의문에 지뢰 도발을 언급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게 실질적으로 여의치 않다면 차선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북측·과 ’지뢰’ ‘유감’의 키워드를 끄집어내 합의문에 담은 것은 여야 정치권과 국민 다수가 평가하듯 적지 않은 성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정치입니다. 새정치연합은 북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과거 2002년 7월 제2연평해전 당시를 되돌아 본다면 그다지 할 말이 없을 듯 합니다. 김대중 정부 임기 마지막해이던 당시 북측은 제2연평해전 이후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대표의 통지문을 통해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고, 김대중 정부와 여당(새정치연합 전신 민주당)은 사실상 이를 북측의 사과로 받아들였습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야당의 처지가 됐다고 해서 ’유감’의 의미와 무게를 달리보는 것은 이래저래 설득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물론 반대의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나 보수진영은 북측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볼 수 없다며 정부를 맹비난했었습니다. 한 보수 언론은 ‘이것이 사과인가’라는 사설을 통해 “도저히 사과라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환영의 뜻을 밝히고 나선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고 열을 올렸습니다.
●국민 72% “북측 유감은 사과”...정치권은 여전히 민망한 공방중
북측의 유감 표명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은 결국 외교와 정치의 간극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국익이 충돌하는 외교 현안에 대해, 더구나 자칫 전면전으로까지 치달을 수도 있는 남북 간 무력 충돌 앞에서 외교를 정치적 잣대로 재단하는 일은 극히 신중해야 합니다.
하긴 이런 정치권의 행태를 미주알고주알 따질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25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에서 응답자의 72.1%가 북측의 유감 표명을 사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22.0%)를 크게 웃돕니다. 유감 표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응답자가 70.6%, 만족스럽다는 응답자가 23.5%인 걸 보면, 적어도 국민 3명 가운데 2명 이상은 북측의 유감 표명을 만족스럽진 않지만 사과로 본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런 여론 앞에서 사과니 아니니 하며 공박을 벌이는 정치권, 하루이틀도 아니지만 여전히 민망합니다.
진경호 편집국 부국장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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