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당적 이탈 국회법 명문화
‘정치적 중립 모델’ 채택에도 논란
野 “우 의장, 노골적 민주당 의원 행세”
사퇴촉구·권한쟁의심판 청구도 일상화

무효표 논란 여야 충돌
9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의 건’에 무효표 논란에 대해 우원식 국회의장과 대화를 하던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목소리를 높이며 충돌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간의 타협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는 중립지대의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제 완전히 국회의장으로서의 책무를 벗어던지고 노골적으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행세를 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원내대책회의에서 우 의장을 향해 쏟아낸 힐난이다.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유공자 예우법’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표결 때 명패 수보다 투표수가 1표 더 나왔으나 우 의장이 재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공익신고자보호법 신속처리안건 지정 표결에서는 해독이 엇갈리는 표를 민주당에 유리하게 결정한 데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앞서 지난달 2일 내란특검의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압수수색 때도 우 의장과 국민의힘이 충돌했다. 우 의장은 송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의 의장실 항의 방문에 작심한듯 “한두 번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거냐. 원내대표가 다 끌고 와서 뭐 하는 거야. 의장을 모욕하고”라며 고성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번 22대 국회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국회의장과 야당의 갈등은 일상이 됐다. 의장이 여야 합의를 촉구하며 본회의와 안건 상정일을 미루다 마지못해 본회의를 열던 관례도 거의 사라졌다. 국가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는 2002년 16대 후반기 국회부터 국회법에 당적 이탈 의무가 명문화되며 시작됐다. 하지만 어떤 국회의장 모델이 우리 국회에 적합한지를 두고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법 개정으로 ‘의장 모델’ 수정 시도
중립 의무 강화 vs 다수당 대표자로
임기 만료 후 ‘친정 복귀 금지법’
승자독식 임기 4년 명문화 개정안도

패스트트랙 지정 의장실 항의 방문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9년 4월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장실을 항의방문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피해 의장실을 나가고 있다. 서울신문 DB
국회의장의 역할과 의무를 조정해야 한다는 국회법 개정 움직임도 계속됐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1대 국회에서 국회법 제10조의 ‘의장은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한다’를 ‘중립적으로 의사를 정리하며’로 바꾸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 들어서는 지난 7월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의장 임기가 끝나도 소속 정당으로 복귀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재직 중 공정한 의사 진행 및 결정을 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현행법으로는 의장의 정치 중립성이 유지되기 어렵다”며 “남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임기 동안 소속 정당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해 국회 운영의 중립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친정 복귀를 차단하면 보다 독립적인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취지다.

국회법 관련 이야기하는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9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의 건에 대한 투표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투표수가 명패수보다 한 매 더 많이 나온 것과 관련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허영 원내정책수석부대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가 우원식 국회의장과 국회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22대 총선을 내리 승리해 줄곧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은 오히려 의장의 권한과 역할을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해왔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총선 결과에 따라 과반 의석을 확보한 원내 제1당이 국회의장과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승자독식 방식’ 채택이 핵심이다.
의장도 대통령처럼 ‘탄핵’
“의장만 견제 방안 전무”
불신임 절차 신설 추진도의장의 탄핵 또는 불신임 절차를 신설하는 개정안도 여럿이다. 정치적 의사표현인 ‘사퇴 촉구 결의안’으로는 의장의 권한을 견제할 수 없기에 강제로 의장을 끌어내리는 장치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 16대 후반기 국회 이후 13인의 의장 중 11인에 대한 사퇴 촉구 결의안이 발의됐으나 대부분 폐기됐다. 한편 정의화(19대 전반기) 전 의장, 박병석(21대 전반기) 전 의장 단 2인만이 사퇴 촉구 결의안을 피했다.
우 의장에 대해서는 지난해 6월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이 당론으로 사퇴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국회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것도 국회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오른쪽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수석대변인, 정의화 국회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 김영록 원내수석부대표, 이개호 원내부대표. 서울신문 DB
새정치, 정의화 의장 항의 방문
정의화 국회의장이 2014년 9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을 국회의사일정과 관련해 항의 방문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단과 면담을 마친 뒤 배웅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수석대변인, 정의화 국회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 김영록 원내수석부대표, 이개호 원내부대표. 서울신문 DB
오른쪽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수석대변인, 정의화 국회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 김영록 원내수석부대표, 이개호 원내부대표. 서울신문 DB
22대 국회에서는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장을 불신임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불신임안 발의 후 첫 본회의에서 지체 없이 기명 표결’이라는 실효적 장치도 마련했다. 부의장과 상임위원장에 대해서도 해임이 가능하게 했는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사회를 거부해온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부의장, 국민의힘 몫 상임위원장을 사실상 겨냥한 법이다.
앞서 20대 국회에서는 박맹우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의장이 의회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 및 정치적 중립의무를 훼손하는 경우 이에 대한 견제 방안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대통령 탄핵소추처럼 의장의 불신임 절차를 신설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21대 국회인 2022년 9월 의장과 부의장을 후보 등록, 연설 후 선출하는 새로운 의장단 선출 방식을 도입하는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국회법 모델은 ‘영국 하원의장’
현실은 ‘권한 역부족’ 미국 하원의장
당적 이탈 규정 폐지 현실론도

국민의힘-국회의장실 앞-검수완박 저지 손피켓 시위
국민의힘 의원들이 2022년 4월 30일 오후 국회 의장실 앞에서 검찰청법 개정안 처리 관련 본회의 개의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장환 기자
국회입법조사처는 정치적 현실을 수용해 탈당 규정을 삭제하고 이른바 ‘다수당 당파적 지도자’ 모델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7월 ‘이슈와 논점 : 국회의장의 역할 갈등’ 보고서에서 우리 국회법의 이상 모델은 영국 하원의장이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영국 하원의장은 당선과 동시에 탈당하고 불편부당하게 본회의를 주재해야 한다. 의사일정 결정 권한이 없고, 소수정당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반면 미국 하원의장은 당적을 보유하고 다수당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대변한다. 또 다수당의 입법 의제 통과를 위해 규칙 정지, 만장일치 동의 등을 적극 활용해 결정권을 행사한다.
입법조사처는 “국회마다 제2당이 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정치 현실을 수용해 다수당 대표형 의장 모델을 채택하는 것이 해법 중 하나”라며 “의장의 당적 이탈 의무를 삭제하고 현재 의장이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협의하게 돼 있는 의사운영과 관련된 조문들을 의장의 재량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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