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프린스호 사고 악몽 떠올려…관계당국 늑장대응에 분통
1일 오전 전남 여수시 신덕마을 일대에는 낙포동 낙포각 원유 2부두에서 유출된 기름이 해변과 바다를 뒤덮고 있었다.전날 오전 9시 30분께 싱가포르 선적 16만4천169t급 유조선이 접안을 하기 위해 부두에 접근하던 중 해상 구조물인 돌핀 3기를 들이받고 원유하역배관과 잔교를 부순 뒤 멈춰 섰다.
GS칼텍스 측에 따르면 사고 당시 해당 유조선은 원래대로라면 접안선 4대의 도움을 받아 부두에 정박해야 하지만 부두를 100여m 앞두고 갑자기 진로에서 왼쪽으로 약 30도가량 벗어나 돌진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처럼 속도를 높여 돌진하던 유조선은 두 해상 잔교 사이를 지나 원유 하역배관을 지지하는 해상 구조물인 ‘돌핀’ 6개 중 3개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잔교와 원유하역 배관을 부수고서야 멈춰 섰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원유배관에서 기름이 유출되기 시작했다. GS칼텍스 측이 원유 배관을 잠그는 조치를 했으나 배관 속에 남아 있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됐다.
원유 하역 배관 주변에는 상시로 설치된 오일펜스가 있었으나 유조선이 돌진하면서 이마저 훼손해 유출된 기름 일부는 먼바다로 퍼져갔다.
기름띠가 사고 해역으로부터 남쪽으로 길이 약 4km, 폭 1km 범위에 형성됐으며 신덕마을 일원으로 엷은 유막이 부분적으로 분포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가 심각한 곳은 사고현장에서 약 2㎞가량 떨어진 신덕마을 해변이다.
이곳은 1995년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로 수개월 동안 방재작업과 수년 동안의 오염피해로 고통을 겪은 어촌 마을이다.
1995년 7월 23일 14만5천t급 유조선 시프린스호가 여수 소리도 인근에서 태풍 ‘페이’로 좌초, 원유와 벙커C유 5천35t이 유출됐다.
여수 앞바다는 물론 부산과 일본 쓰시마섬 인근 해역까지 기름띠가 퍼져나갔다. 3천826ha의 양식장이 황폐화됐고 1천50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원유 유출량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당시보다는 훨씬 적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신덕마을은 해변을 뒤덮은 기름띠가 밀물 때에 마을 깊숙한 하천까지 밀고 들어와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마을 주민 수십 여명은 기름냄새 탓에 두통과 역겨움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은 전날 기름 유출사실을 모르고 진동하는 기름 냄새에 보일러가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은 해변으로 몰려나와 삶의 터전인 바다와 해변 갯벌을 뒤덮은 기름띠를 보며 20여년 전 시프린스호 사고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사고 발생 직후 해경과 여수시, 마을 주민들은 관공선은 물론 어선까지 동원해 마을 앞바다에 넓게 퍼진 기름띠를 제거하는 한편, 마을 해변과 갯벌까지 밀려온 기름띠 방제작업을 온종일 실시했다.
방제작업에 나선 마을 주민 중에는 80살 노인부터 명절을 맞아 고향집을 찾은 10대 손자도 눈에 띄었다.
주민 박금자(72·여) 씨는 “과거 시프린스호 사고 때는 수십개월 동안 방제를 하느라 마을 모두가 골병을 앓았다”며 “이때 이후로 이곳 수산물은 주변에서 사려 하지 않았다”고 후속 피해를 염려했다.
이날 낮 12시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신덕마을 방제현장을 찾자 마을 주민의 항의가 이어졌다.
뒤늦게 방제 현장을 찾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윤 장관은 “처음에는 피해가 크지 않다고 보고받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며 “현장에 직접 와보니 보고받은 것보다 심각한 것 같다”고 밝혔다.
늑장대응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현장을 찾은 주승용 의원은 “사고 발생 24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정확한 원유 유출량과 사고 원인 등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방제작업을 하는 주민들이 안전한지조차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