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식구 감싸기·꼬리 자르기 논란대법 “법관직 유지시 재판 공정성 손상” 해명
인터넷 악성 댓글을 상습 작성한 A 부장판사가 사직 처리되면서 그가 왜 댓글을 작성했고, 그 사실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등 사건 경위는 미궁 속에 빠졌다.A 부장판사 본인이 사표를 제출한지 불과 하루 만인 지난 14일 오후 대법원이 전격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꼬리 자르기’ 혹은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사채업자로부터 대가성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민호 판사 사건에 이어 법관의 일탈 행위가 또다시 불거지면서 그동안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해온 사법부가 신뢰의 위기에 빠졌다.
◇ 대법, 댓글 유출경위 파악 못해
대법원은 A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해당 행위가 의원면직 제한 사유에 해당하는 ‘직무상 위법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직무 관련성을 사실상 부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A 부장판사의 징계 여부를 검토하기에 앞서 그가 악성 댓글을 작성한 사실이 어떻게 언론 매체에 보도됐는지를 파악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A 부장판사가 사직 처리되면서 법관징계회의에 회부할 수 없게 돼 본인으로부터 왜 댓글을 작성했는지 등에 관한 소명을 들을 기회도 없어졌다.
다만, A 부장판사의 댓글이 사건화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그가 사법부 소속이 아닌 개인으로서 댓글 작성 사실의 유출 경위를 수사 의뢰하는 경우 또는 댓글에서 언급된 이들이 그를 모욕이나 사자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고소하는 경우다.
A 부장판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투신의 제왕’이라 비난하는 등 모욕적인 댓글을 다수 작성한 바 있다.
◇ “재판 신뢰 고려해 사직 처리”
A 부장판사가 신속히 사직 처리되자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징계 처분 없이 의원면직 처리해 사직 후 변호사 개업 기회를 살려줬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법관에 대한 징계는 정직, 감봉, 견책 등으로 제한돼 있다. 검찰 공무원 등에 대해 면직, 파면까지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법관징계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는 정직 1년이다.
대법원으로선 사표를 반려하고 징계 처분을 내려 A 부장판사가 사법부에 계속 남는 경우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 “A 부장판사가 법관직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에 더 큰 손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변호사법 8조는 ‘재직 중 위법행위로 인해 징계 처분을 받은 자’뿐만 아니라 ‘재직 중 위법행위와 관련해 퇴직한 자’도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최근 등록 절차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변호사 단체 분위기를 볼 때 A 부장판사는 변호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한 것으로 판단돼 개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편향적 법관’ 장기적 대책 필요
대법원은 A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그를 둘러싼 논란을 되도록 빨리 진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조직 전체와 무관한 개인적 일탈로 규정하는 이른바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올해 대법원 시무식에서 “우리는 신뢰의 탑이 작은 사건 하나로 무너지고 마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다”며 “정당성을 항상 재점검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최민호 판사가 사채업자로부터 대가성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A 부장판사가 저급한 댓글을 수천건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양 대법원장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특히 A 부장판사 사건은 법관이 편향적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상당한 파문을 낳았다.
대법원은 지난 5일 최민호 판사 사건과 관련, 비위 의혹이 제기된 판사를 즉시 재판 업무에서 배제하기로 하는 등 법관 윤리감사를 강화하겠다며 후속 대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A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사표 수리 이외의 공식 대응이 없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조일원화로 법조 경력자에 의한 법관 선발이 확대될 예정인 가운데 A 부장판사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비슷한 사고를 막기 위해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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