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총구보다 5월 참상 묻히는 것이 더 두려웠다”

“나를 향한 총구보다 5월 참상 묻히는 것이 더 두려웠다”

입력 2015-05-14 14:41
수정 2015-05-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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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참상 사진으로 세상에 알린 나경택 기자

“카메라를 든 나를 향한 계엄군의 총부리보다 5월 참상의 증거인 필름을 빼앗기는 것이 더 두려워 아파트 천장과 친구집 장독대에 숨겼었죠.”

5·18 광주 한복판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기자인 나경택(66)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은 14일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고 신문을 인쇄하는 사람들도 대피하고 나도 일할 필요가 없었다”며 “하지만 누군가는 이 참상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씨는 1980년 당시 사진기자로 근무했던 전남매일(광주일보 전신) 사옥인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 내부나 인근 건물 옥상 등에 숨어 1980년 5월의 진실을 기록했다.

매일 수차례 총을 겨눈 군경의 위협을 받았고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있었던 5월 27일에는 불과 2.5km거리였던 방림동 자택에서 전남도청까지 36번의 검문이 있었지만 나씨는 기록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들이 ‘채증 사진’을 찍어 시위 참가자들을 잡아가는 일이 빈번해 시민들 역시 카메라를 보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5월 21일 낮 계엄군이 도청 앞 광장 집단 발포를 할 때도 나씨는 계엄군에 끌려갈 위험을 무릅쓰고 카메라를 움켜쥔 채 인근 대도여관 옥상에 숨어있었다.

바깥에서는 모 대위가 통신병에게 “발포명령 어떻게 된거야?”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낮 12시 30분이 조금 지났을까.

”발포합니다”라는 통신병의 보고가 들렸고 시민들을 향한 발포가 시작됐다.

취재 중 상황이 급박해지자 교도 통신 특파원 등 동료 기자 7명과 함께 인근 여관과 성당으로 대피를 시도했다. 머리 위로는 군용 헬기에 장착된 총이 기자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다시 전남도청으로 향하는 그를 향해 한 수녀가 카메라를 숨길 수 있도록 천으로 된 장바구니를 건넸다.

해가 뜨면 숨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담았고 밤이면 텅 빈 회사에서 수돗물에 필름을 씻어 현상하는 수세(水洗) 작업을 반복했다.

신문에 발행할 수도, 누구에게 보여줄 수도 없었지만 나씨는 후일을 기약하며 아파트 천장에 필름을 숨기기 시작했다.

집에 군인들이 들이닥치기도 하면서 혹시 들켜 필름을 빼앗길 경우에 대비해 일부는 인화해 친구집 장독대에 숨겨놓기도 했다.

1987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책 발간과 전시로 나씨의 사진들은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이들 사진 속에는 계엄군이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들것에 시신이 실려가는 모습 등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나씨의 5·18 사진들은 이후 국회 청문회 등에서 활용돼 진상 규명에 큰 역할을 했고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 대상에도 포함됐다.

5·18 35주년을 맞아 오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 5·18 기념문화관에서는 나씨와 당시 정보사령부 소속 군인이었던 이상일 고운사진미술관장이 기증한 사진을 전시하는 제35주년 5·18 민중항쟁 특별사진전 ‘그날의 노래’가 열린다.

나씨는 “’불순세력의 폭동’으로 조작됐던 5·18의 진실을 알린 것이 살아 생전 가장 잘한 일 같다”며 “희생자들에게 35년전 누명을 또 씌우려는 일부 세력의 기도를 이겨내고 발포 명령자와 행방불명된 피해자들을 밝히는 진짜 과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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