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나온 조합원이 울자 “별거 아냐”, “왜 울어?” 위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우여곡절 끝에 은신 24일 만인 10일 오전 10시 24분께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관음전을 나설 때 경내엔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렸다.한 위원장은 조계사 부주지 원명 스님의 뒤를 따라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좌우 나란히 관음전 건물을 걸어나왔다. 그 뒤로는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따랐다.
단식 때문인지 얼굴 살이 빠져 광대뼈가 도드라진 데다 수염을 깎지 않아 다소 수척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긴장한 듯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한 위원장은 관음전을 나서 조계종 직원들이 좌우로 늘어서 만든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대웅전으로 향했다.
미리 경내로 들어와 있던 일부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위원장님 걱정마세요,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등 소리를 질러 한 위원장을 응원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대웅전으로 들어가 약 1분간 부처님에게 삼배했고, 곧이어 대웅전을 나와 다시 조계종 직원들이 만든 길을 따라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 들어섰다.
이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한 위원장은 기념관으로 들어설 때 좌우의 조계종 직원과 조합원들에게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라며 인사를 전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일부 조합원은 ‘2천만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켜주세요. 공안탄압 규탄’ 등이 쓰인 어깨너비 길이의 플래카드를 양손으로 펼치다 조계종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자승 스님과 약 20분간 면담을 하고 나온 한 위원장은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자신을 배웅·응원하러 온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는 등 조합원들과의 대면에 집중했다.
그는 오른손에는 염주를 둘둘 말아 쥐고 있었다.
곧이어 기자회견 장소인 생명평화법당 앞으로 이동한 한 위원장은 머리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비정규직 철폐’라고 쓴 머리띠를 비장한 표정으로 두르고는 “잠시 현장을 떠나지만…”이라고 말문을 열고 비분강개한 어투로 정부의 ‘노동개악’과 ‘폭력진압’ 등을 비판했다.
회견에서 “조계종의 성지가 공권력에 의해 침탈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 자진출두하게 됐다”고 밝힌 그는 조계종 등 종교계가 사회 양극화 문제와 ‘노동개악’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11시 5분께 기자회견을 마친 한 위원장은 조계종 정문인 일주문을 향하며 다소 부드러운 표정으로 좌우에 늘어선 조합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눈물을 보이자 “별거 아니야”, “울지 마, 왜 울어?” 등 위로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일주문 앞에서 조합원들을 향해 “야무지게 싸워나갑시다”라고 소리치고 구호를 외친 뒤 일주문을 나섰다.
한 위원장이 일주문 밖 경찰 병력이 늘어선 곳으로 나오자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경찰은 한 위원장 외에 다른 일행들을 막아서고 한 위원장을 둘러쌌다.
이어 체포영장을 한 위원장에게 제시하고 나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곧바로 한 위원장을 체포했다.
이때 곁에 있던 스님이 한 위원장에게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을 잠깐 제지하기도 했으나 결국 염주를 차고 있던 한 위원장의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경찰은 한 위원장을 곧바로 호송차에 태워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방송차 취재차량들이 호송차를 따라가며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남대문서에 도착한 한 위원장은 별다른 발언 없이 조용히 경찰서로 들어갔고, 주위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없었다.
한 위원장은 현장 노동자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민주노총이 처음으로 치른 직선제 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인물이다.
그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시절 77일간 쌍용차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벌인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3년간 실형을 살고 2012년 8월 출소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평택공장 인근의 30m 높이 송전탑에 올라 171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