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보다 강한 독성물질 함유…반려동물 잇따라 죽어
피마자 유박비료를 먹은 동물의 죽음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유박비료가 동물에 치명적인 독성물질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박비료는 과자처럼 생기고 냄새도 향긋해 아이들이 먹을 수도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박(油粕 : oil-cake)은 피마자, 참깨, 들깨 등의 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로 식물 성장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성분을 갖고 있어 비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피마자(아주까리) 유박비료는 맹독물질인 리신(Ricin)이 들어 있어 반려견과 고양이 등 야생 동물에는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생물무기로도 사용돼온 리신은 가장 강력한 자연 발생 유독물질 중 하나로 청산가리보다 강력하다.
이모(35)씨는 지난해 3월 중순, 전남 담양군 자신의 아버지 집 부근에서 놀던 아끼다견 2마리(3개월)가 유박비료를 먹고 폐사하는 아픔 경험을 했다.
토양에 뿌려둔 비료를 먹은 개들은 구토 증상을 보였고, 입에서 독한 암모니아 냄새를 내면서 혈변을 누기도 했다.
병원에서 3∼5일 치료를 받았지만,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폐사했다. 원인은 유박비료 중독으로 결론났다.
강원도 가축위생연구소 연구팀도 2013년 ‘유박비료를 섭취한 개에서의 피마자중독 증례’라는 보고서를 통해 피마자 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연구팀이 당시 사육장 주변에서 유박비료를 먹고 죽은 진도 잡견(3년생 암컷)을 상대로 한 부검에서 개의 내장은 한마디로 ‘만신창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개는 폐사 사흘 전 주변에 뿌려진 유박비료를 먹었고 이후 구토와 출혈성 설사, 복통 증상을 보였다.
부검 결과, 전신성 장기 출혈성 중독성 변성과 심장출혈 반점, 간변성, 신장변성, 위장장관 출혈성 괴사 등의 증상이 확인됐다.
조직에서는 간·신장·소장·비장 출혈 및 중독성 세포 괴사와 혈철소 함유 세포가 관찰됐다.
만약 5㎏짜리 개가 유박비료 100g을 먹었다면 몸에 흡수된 피마자박은 10%에 이른다.
피마자박에 1∼5%의 리신이 함유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개는 리신 100∼500㎎을 먹어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폭넓게 사용하는 피마자 유박비료는 다른 비료보다 가격이 저렴해 농가에서 인기가 높다.
농촌 지역에선 20㎏짜리 한 포대가 1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이처럼 농촌 곳곳에 유박비료가 널려 있고 이를 먹은 반려견이 죽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포대에 경고문만 쓰여 있을 뿐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선 정확히 보고된 바 없다.
동물 부검을 통해 어렴풋이 그 위험성을 짐작할 따름이다.
피마자가 든 유박비료는 개가 좋아할 만한 향을 가진 데다 모양도 일반 사료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밭과 과수원 등을 돌아다니던 개와 고양이들이 이를 모르고 먹는 사례가 많다. 야생동물 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하지만 정확한 피해 집계는 없다.
섭취할 경우 임상 증상은 출혈성 구토, 출혈성 설사, 복통이며 고열, 발작, 코마, 황달 등도 보고됐다. 개의 치사량은 20㎎/㎏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부분 피마자 유박비료가 알갱이 형태로 제조돼 반려견들이 이를 사료로 착각해 먹기 일쑤여서 수용성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피마자의 독성이 문제가 되자 피마자 대체재를 사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비료업계는 회의적이다.
모 비료 생산공장 관계자는 “피마자는 인도에서 대부분 수입하는데 가격 경쟁력이 있고 질소 등 비료 주성분 함량도 좋아 대체재를 찾기 어렵다”라며 “예전에는 유기질 비료 원료로 유채 유박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로 사료용으로 사용된다. 이만한 원료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피마자 유박은 현행법상 비료 원료로 사용해도 되는 합법적 재료”라며 “피마자 유박의 독성 때문에 애완견이나 가축이 죽는 피해가 잇따라 경고 문구를 넣도록 규정이 개정돼 이 또한 지키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변남주 국회 환경토론 자문위원은 “피마자 유박비료가 청산가리의 6천 배나 되는 독성을 갖는 리신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료업체, 농촌진흥청, 원료 수입업체들이 알고 있지만 사실상 방치 상태”라며 “현재 피해사례는 반려동물이나 가축 등에 국한돼 있지만, 야생동물들의 피해까지 생각하면 근본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이나 상점의 화분에도 피마자 유박비료가 사용되고 있어 유아들도 먹을 위험성이 있다”며 “가습기 살균제처럼 수백 명이 피해를 본 뒤에 대책을 마련하면 늦기 때문에 위험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정확한 성분 분석과 임상시험을 거쳐 유해성 확인과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인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비료업체가 시료를 제출하면 비료관리법에 따라 검사 후 승인을 내주고 성분 함량 등을 수시로 검사한다”라며 “질소, 인, 칼륨 등 비료 성분비 검사는 필수적이지만 피마자가 불법성분이 아니어서 따로 검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이 보도된 후 반려견 주인과 농민들은 인터넷 카페에 기획기사물을 퍼나르며 피마자 유박비료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한 누리꾼은 “아이들 몇 명이 과자인 줄 알고 먹어 사고가 터져야 정신을 차리려나”라며 “위험성을 알고도 내버려둔다면 더 큰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정부는 안일한 생각으로 넘어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일침을 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