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4년제 대학 구조조정 ‘무풍지대’
지방 전문대 학생 수 10년간 3분의 1 줄어
지방대 위기 대책 마련 정부에 촉구
6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서 열린 ‘지방대학 위기 정부 대책 및 고등교육 정책 대전환 요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1.5.6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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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정보과 등 3개 학과의 폐지를 추진하는 한림성심대의 이명헌 교수는 “교육부의 ‘충원율’ 기준이 지방대를 구조조정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원 춘천에 있는 한림성심대는 2021학년도 입시에서 신입생 충원율이 81.5%에 그치자 이번 입시에서 충원율이 가장 저조한 3개 학과를 없애기로 했다. 이 교수는 “지방 전문대는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결돼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등 4년제 대학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대학 구조조정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모두가 발전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대의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쏠림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산업과 자본,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학 구조조정은 지방대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이 최근 10년간의 대학 정원과 입학생 수 등을 분석한 결과 이른바 ‘인(in)서울 4년제’가 학생 수 감축 압박을 비껴간 사이 지방 전문대는 ‘3분의2 토막’이 나는 등 양극화가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대는 지방 인구 유출과 산업 붕괴를 막는 댐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지방대의 위기가 지방 소멸을 가속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9일 종로학원하늘교육과 한국교육개발원 교육 통계에 따르면 2010년 69만 267명이던 대학 학부(일반대학·교육대학·전문대학 등) 입학생은 2020년 59만 9924명으로 9만 343명(13.1%) 줄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들은 정원 감축과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은 구조조정의 무풍지대나 마찬가지였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입학정원은 10년 사이 7만 4562명에서 7만 2666명(2.5%) 줄었으나 정원 외 입학을 포함한 총 입학생 수는 8만 4086명에서 8만 4818명으로 오히려 증가(0.9%)했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은 정원 외 선발인원을 늘리고 이를 대부분 충원하면서 정원을 줄여도 실제 입학자 수가 늘어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서울 4년제’가 학생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사이 지방의 대학 생태계는 속절없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8개 도 지역 및 세종시 소재 4년제 대학은 최근 10년간 입학생 수가 15만 564명에서 13만 5158명으로 14.2% 감소했다. 같은 기간 비수도권 5개 광역시(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에 위치한 4년제 대학 입학생 수는 8만 8766명에서 8만 1021명으로 8.7% 줄었다. 서울 소재 대학들이 학과를 60개 늘리는 사이 도 지역 및 세종시에서는 108개 학과가, 비수도권 광역시에서는 140개 학과가 사라졌다. ‘가장 약한 고리’인 지방 전문대는 존립마저 위협받았다. 10년간 전문대 입학생 수는 도 지역 및 세종시에서 34.1%, 비수도권 광역시에서 26.8% 줄었다. 사라진 학과 수는 전국적으로 847개(2.7%)에 달한다. 줄어든 학령인구로 인한 고등교육의 위기를 지방대와 전문대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버텨 내고 있는 셈이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2023학년도까지 대학 정원 16만명을 줄이겠다는 교육부의 정책이 사실상 실패하면서 지방대의 위기가 가속화됐다”고 지적했다.
2015~2023년 9년간 대학생 정원 16만명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교육부는 첫 3년 동안 (2015~2017년) 총 4만 6000명을 줄였다. 최우수 등급을 받지 못한 모든 대학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획일적·강제적 정원 감축’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두 번째 평가(2018~2020년)는 하위 대학만을 대상으로 총 1만명을 줄였다. 대학 평가에 교원 확보율과 취업률, 학생 충원율 등 지방대에 불리한 지표가 포함된 탓에 실제 구조조정 대상이 된 대학의 70%가 지방대였다.
세 번째 평가(2021~2023년)는 정원 감축을 이른바 ‘시장 원리’에 맡겼다. 교육부가 재정지원 대상 대학을 선정할 때 주요 지표로 활용하는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지표 배점을 10점에서 20점으로 높여 재정지원을 받으려는 대학은 스스로 정원을 줄이는 구조를 만들었다. 지방대학들은 신입생 충원율이 저조한 학과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통폐합에 나섰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알아서 망해라”라는 자조마저 나온다. 임 연구원은 “평가가 이어질수록 수도권 대학 정원은 건드리지 못한 채 지방대만 쪼그라들고 있다”면서 “이미 정원을 줄인 지방대들이 또 정원을 줄이면서 재정이 줄고 교육 여건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김소라·손지민 기자 sor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