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낯선 부서로 발령난 40대 우울증 인한 자살은 업무상 재해

갑자기 낯선 부서로 발령난 40대 우울증 인한 자살은 업무상 재해

송수연 기자
송수연 기자
입력 2016-04-17 23:40
수정 2016-04-18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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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산재 유족급여 등 지급하라”

20년 동안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근무한 A(당시 47세)씨는 2012년 1월 신설된 부서에 자금지원 담당 부장으로 발령받았다. A씨는 입사 이래 자금지원 업무를 해 본 경험이 없었고, 팀원들 중에도 이 일을 1년 이상 해 본 사람이 없었다. 결국 발령 두 달 만에 ‘사고’가 터졌다. 거래처와의 중요 업무가 잘못되는 바람에 소속팀이 목표했던 성과를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다.

●회사 일 잘못 됐다며 통곡하기도

평소 꼼꼼한 성격이던 A씨는 아내에게 “내가 회사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부서원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됐다”며 자책했다. 동료나 후배들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집에서 자다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 “회사 일 처리가 잘못됐는데 복구할 수 없다”며 통곡을 한 적도 있었다.

A씨는 아내의 권유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의사에게 “책임감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싶고 자살하고 싶다”고 말한 그는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다른 부서 배치 요구했지만 묵살

A씨의 부인은 남편의 증상이 심해지자 회사 측에 다른 부서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담당 거래업체가 공단에서 지원해 준 돈을 갚지 않고 연락을 끊자 A씨의 우울증은 극도로 악화됐다. 결국 A씨는 새 부서로 옮긴 지 1년 5개월여 만인 2013년 5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부인은 “남편이 업무상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에 숨졌다”면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단은 “개인적인 취약성에 의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 이진만)는 A씨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낯선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을 한 직장인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17일 밝혔다.

●업무상 스트레스 재해 폭 넓어져

최근 법원은 업무상 스트레스 재해에 대해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지난 2월 대법원은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맡은 중학교 교사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목숨을 끊은 데 대해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한 대형 건설사 부장이 영어 스트레스로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린 사건에 대해서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2012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회사 권고로 퇴직한 뒤 자살한 택시기사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법원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라는 시각이 강했는데 최근에는 재판부들이 근로자의 입장에서 업무 강도 등을 감안해 산재로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2016-04-1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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