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게 끝난 교포 청년의 고국 코트 도전

허망하게 끝난 교포 청년의 고국 코트 도전

임병선 기자
입력 2015-10-30 09:09
수정 2015-10-3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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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프트 신청 마감 사흘 뒤 ´귀화하라´ 규정 변경 통보

 국내 코트에서 뛰고 싶다는 한 미국 교포 청년의 꿈이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지난 26일 프로농구연맹(KBL)의 2015 국내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 참여한 38명 가운데 일반인 실기 테스트를 통과한 미국 교포 벤자민 길(23)이 있었지만 끝내 그는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지명되지 않았다. 그의 드래프트 도전을 도왔다고 밝힌 ‘wjung’은 지난 28일 KBL 출입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KBL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절차로 인해 마음의 상처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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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의 26일 국내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 앞서 트라이아웃 경기에 열중하는 벤자민 길(왼쪽).  점프볼 제공
KBL의 26일 국내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 앞서 트라이아웃 경기에 열중하는 벤자민 길(왼쪽).  점프볼 제공
 그에 따르면 벤자민은 지난 2일 KBL로부터 서류심사 합격 통지와 함께 8일 실기테스트에 참석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러나 다음날 갑자기 KBL로부터 외국인 및 동포 선수 규정이 변경됐다는 이메일 통보를 받았다. ‘드래프트 선발 해외동포 선수 및 혼혈 선수의 의무’ 조항 중 종전 ‘드래프트 이후 3번째 시즌 선수 등록일(2018년 10월 26일)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를 ‘KBL 등록 선수 중 2015년 10월 26일 이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해외동포 선수 및 혼혈 선수는 외국인 선수로 간주되며, 외국인 선수에 대한 2015~2016 시즌 경기 출전 제한 룰이 적용된다. 또한 각 구단에서 오직 1인의 외국인 귀화 선수만 보유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2일 실기테스트 통보를 해놓고 다음날 사실상 26일 드래프트 전까지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고 다시 통보한 셈이다. 학생 신분인 그가 한국에서 취업하거나 프로농구팀에 소속되기 전에는 한국 국적 취득이 아예 불가능한데 이런 요구를 한 것이라고 벤자민측은 반발했다. 김영기 총재 앞으로 ‘드래프트 신청 마감 사흘 뒤 규정 변경을 통보한 것은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매력적인 무대로 떠오른 KBL의 명성에 금이 가게 할 것’이란 골자의 항의 문서를 보내 적용 시기를 미뤄줄 것을 요구했다. 벤자민과 모친은 이미 한국행 항공편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KBL은 규정 변경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드래프트 신청을 두달 앞두고부터 준비에 매달려왔던 벤자민의 에이전트는 마지못해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8일 실기 테스트에 응한 벤자민과 모친은 11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이틀 뒤 합격 통지를 이메일로 받고 23일 다시 한국으로 떠나 26일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규정 변경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점을 뻔히 알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두 차례나 모국을 모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구단의 선택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가는 길, KBL의 엉성한 일처리 때문에 농락당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28일과 29일 KBL의 해명을 들었다. 다음과 같다. ‘지난 5월 11일 이사회를 열어 국내 선수의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교포 선수들의 진입을 막는 규정 변경을 시도했다. SK 같은 팀을 보라. 외국인 선수 둘에 귀화, 혼혈 선수까지 즐비해 형평성을 지적받곤 하지 않느냐.

 그러나 KBL 역시 규정 변경에 보완할 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특히 벤자민의 경우 우리가 늦게 통보한 잘못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실기 테스트에 응할 기회를 줬다. 당사자들도 규정 변경에 동의한다는 서류를 냈다. 다행히 기술위원들이 실기테스트에서 합격점을 줘 통과했고 드래프트까지 나왔지만 어느 구단도 선택하지 않았다. 규정 변경 때문만이라고 보지 않는다. NBA는 한 번 드래프트에 나왔다가 지명되지 않으면 다음 기회가 주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제한이 없다. 따라서 벤자민이 다음에도 국내 코트에 도전할 수 있다.’
 벤자민의 에이전트는 “물론 규정 변경이 없었더라도 벤자민이 드래프트에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으며 이미 끝난 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면서 “고국의 프로농구 단체가 미숙한 행정 처리와 아집으로 아직 젊고 발전 가능성이 충분한 선수의 마음에 실망과 상처를 안기고 좌절시킨 점을 알려 이런 잘못이 재발하지 않도록 기자들에게 알린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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