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아주 작은 배려/한승혜 주부

[2030 세대] 아주 작은 배려/한승혜 주부

입력 2020-08-13 22:04
수정 2020-08-14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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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 주부
한승혜 주부
몇 년 전 답답하고 짜증 나는 상황을 두고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다. 문자 그대로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과장되게 일컫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입버릇처럼 그 말을 사용했고, 나 역시 재미있다고 생각해 자주 쓰곤 했다.

하루는 모임에서 이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너무 화가 났다고, 암 걸릴 것 같았다는 식으로 어김없이 저 말을 했는데, 그 순간 자리에 있던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기,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은 안 쓰면 안 될까? 가족 중 한 명이 진짜로 암에 걸렸거든. 그래서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좀 그래.”

당혹스러웠다. 그런 지적을 들으니 민망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난 그저 웃자고 한 말일 뿐인데! 남들도 다 쓰는 말인데! 별 뜻 없이 재미있자고 한 건데!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면 안 되나? 저렇게 정색을 할 것은 또 뭐람? 마치 내가 엄청 큰 잘못을 한 것 같잖아! 지금 생각하면 매우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미안해. 앞으로는 조심할게” 하고 말았는데,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 편이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다.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을 반드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비록 납득은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 불편하다면 가능한 한 그 말을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후로는 혹여라도 비슷한 지적을 또 듣게 될까 봐 해당 표현을 점차 쓰지 않게 됐다.

그로부터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당시 내 ‘진짜’ 의견과 관계없이 순순히 사과했던 것을 정말 잘한 일이라고, 그렇게 하기를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몇 년 뒤 지인 한 명이 암 투병을 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암이라는 병이 얼마나 괴로운지, 무서운지, 사람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이 실제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겪어 본 것이 아니라면 어떤 말이나 표현의 무게를 잘 체감하지 못한다.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만한 예민한 배려의 감각을 타고나는 사람도 드물다. 그렇기에 별다른 악의가 없더라도, 그저 ‘웃자는’ 의도였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후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문제이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상대의 불쾌함이나 분노가 끝까지 납득 가지 않은 경우 또한 없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치적 올바름의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예의와 배려의 문제에 더 가깝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상처받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고 헤아리려는 가장 기본적인 배려의 마음 말이다.
2020-08-1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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