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저 들판 작은 교회/강형철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저 들판 작은 교회/강형철

입력 2018-12-20 17:18
수정 2018-12-21 03:11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저 들판 작은 교회 / 강형철

톱밥 난로 투둑투둑 뜨겁던 교회
마루 틈은 할머니 집사님 흘린 눈물로
까만 때가 스며 있던 교회
그 눈물들이 양초 속에서 매끄럽게 윤이 나던
들판 가운데 작은 교회

종루에 매어진 끈을 잡아당기면
종소리는 겨울 투명한 들녘을 가로질러
나락 벤 자리를 더듬다가
장독대 간장독을 지나
초종, 재종으로 성도들을 불렀지

성탄절 새벽송을 부를 때면
첫사랑 손 스침의 감격이
펼친 찬송가 위에
구주 예수 탄생처럼 명료하던 곳
주일을 못 지키는 일이 있어도
힘든 친구 따뜻하게 받아 안던 교회

끝내 기울어져 전나무를 잘라 받쳐 쓰다가
결국 사라지고 없는 교회
우리들 마음 그 끝에 세워진
저 들판 작은 교회

-

바닷가 길을 떠돌다 컨테이너 두세 칸 크기의 작은 교회를 만나면 반갑다. 교회 안에 들어가 장의자에도 앉아 보고 잠시 묵상도 한다. 벽화 속 눈매 서글한 이에게 잘 지내시지요? 안부도 전한다. 줄에 묶인 종루의 종도 쳐 본다. 구조라 바닷가에서 작은 교회를 본 적 있다. 교회의 목사님이 빛바랜 흰 셔츠를 입고 상추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어느 봄 신입생들이 들어와 대면식을 하는데 한 학생이 구조라에서 왔다고 했다. 나는 녀석에게 그곳의 작은 교회와 상추 캐던 목사님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의 얼굴이 붉어지며 “우리 아빠예요” 했다. 이번 성탄절에 첫사랑 손 스침의 떨림이 남아 있는 들판의 작은 교회에 가고 싶다.

곽재구 시인
2018-12-21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 여러분은 만족한가요?
15년 만에 단행된 카카오톡 대규모 개편 이후 사용자들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수 있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는 “역대 최악의 업데이트”라는 혹평과 함께 별점 1점 리뷰가 줄줄이 올라왔고, 일부 이용자들은 업데이트를 강제로 되돌려야 한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카카오는 개선안 카드를 꺼냈다. 이번 개편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1. 개편 전 버전이 더 낫다.
2. 개편된 버전이 좋다.
3. 적응되면 괜찮을 것 같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