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나무 예찬/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나무 예찬/김재원 KBS 아나운서

입력 2016-06-01 18:24
수정 2016-06-01 18:3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여의도공원을 걸어 출근하다 보면 줄지어선 나무들이 나를 맞이한다. 짧은 봄철 벚꽃에 가려 있던 나무들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지만 그다지 큰 존재감은 없다. 굳이 관심 갖고 이름표를 찾지 않는 한 이름조차 모른 채 지나가는 산책객이 태반이다. 그래도 이팝나무, 계수나무, 피나무, 때죽나무 등은 그저 나무라 불리며 하루 족히 1만명은 될 도시의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뜸 바쁘게 오가는 일상에서 한자리를 꾸준히 지켜내는 나무들이 부러워졌다.

이미지 확대
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제를 하나 내겠다. ‘다음 생물 중 당신이 닮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①독수리 ②사자 ③ 나무 ④풀꽃. 내 답은 ③번이다. 설문조사를 해 본 적은 없어도 지인들에게 대충 물어보면 ①35% ②45% ③8% ④2% 정도의 비율을 예측할 수는 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을 생각하면 당연한 예측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③, ④번을 답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세 가지 꿈이 있었다. 하늘을 날고 싶었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고 싶었고,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고맙게도 세 번째 꿈은 이루었고, 줄잡아 세계 57개국을 둘러봤으니 두 번째 꿈도 이룬 걸로 보자. 첫 번째 꿈은 십수 년 전 ‘도전지구탐험대’에서 스카이다이빙으로 거미, 나비 등의 모양을 만드는 포메이션에 도전했으니 비슷하게 이룬 것 아닐까? 어릴 때부터 하늘을 나는 새가 그리도 부러웠다. 하지만 밴쿠버 유학 시절 지친 날개를 쉬며 가느다란 다리로 걸어 다니는 갈매기들을 바라보며 그들도 피곤하겠다고 느꼈다. 차라리 날개보다 튼튼한 두 다리가 낫겠다 싶어서 날개보다 두 다리가 좋다는 짧은 글을 쓴 기억도 난다.

그 이후로 걷는 취미가 생겼다. 4㎞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고, 휴일에는 몇 시간씩 걸어 도시를 여행하며 하루 2만보 넘기는 쏠쏠한 재미도 챙겼다. 하지만 이마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 족저근막염 같은 병을 두어 번 앓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무가 부러워졌다. 어린 시절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감동은 받았지만 그 삶이 결코 부럽지는 않았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은 간 곳 없고 나무의 진심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달 한국 문학계는 맨부커상의 쾌거를 울렸다. 공교롭게 나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수상소식을 듣기 이틀 전에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다소 컬트적인 요소 때문도 있지만, 나무가 되고 싶은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희랍어 시간’이나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에서도 작가의 나무 같은 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 아버지 밑에서 공부 잘하던 그녀가 어머니의 교통정리로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의 어머니가 그 간섭을 포기해 국문과에 진학했다는 아버지의 인터뷰를 들었다. 그 작가는 아마 나무로 자라, 나무로 남고 싶었나 보다.

분명 우리 아이들 가운데는 나무로 자라고 싶은 아이들이 있다. 풀꽃으로 자라고 싶은 아이도 있다. 부모의 꿈으로 그 아이들을 독수리로, 사자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의 아이를 독수리로, 고래로, 사자로 만들고 싶어 모든 종목을 가르치고 보니 힘에 부친 아이가 결국 오리가 됐다는 농담은 이 시대 부모들을 비웃는다. 나는 50이 돼서야 나무가 좋아졌지만 어려서부터 나무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분명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잘 자랄 것이다. 산은 정상의 나무가 아니라 중턱의 나무들이 지킨다니 말이다.
2016-06-02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 여러분은 만족한가요?
15년 만에 단행된 카카오톡 대규모 개편 이후 사용자들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수 있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는 “역대 최악의 업데이트”라는 혹평과 함께 별점 1점 리뷰가 줄줄이 올라왔고, 일부 이용자들은 업데이트를 강제로 되돌려야 한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카카오는 개선안 카드를 꺼냈다. 이번 개편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1. 개편 전 버전이 더 낫다.
2. 개편된 버전이 좋다.
3. 적응되면 괜찮을 것 같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