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인기 없는 태극기/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인기 없는 태극기/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23-03-01 00:11
수정 2023-03-01 00:11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청나라 사신 아극돈(阿克敦·1685~1756)은 1717년부터 1725년까지 모두 네 차례 조선을 다녀갔다. 그는 조선 사행의 체험을 ‘동유집’(東游集)이라는 문집에 담았는데, 글로 적은 내용에 상응하는 조선의 풍경을 20폭의 ‘봉사도’(奉使圖)로 남기기도 했다. 아극돈이 ‘봉사도’의 밑그림을 조선 화공으로 하여금 그려 바치도록 조선 조정에 요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승정원일기’ 1725년(영조 원년) 3월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부칙사(아극돈)가 “예전 봉사가 사행할 때는 으레 병풍을 청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병풍은 생략하고 산수(山水) 8점을 포함해 모두 6종류를 반드시 그림에 능한 인물로 하여금 그려 주면 당장 족자로 만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극돈은 자신이 원하는 화제(畵題)를 조목조목 나열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려 간 조선의 모습을 자기 나라 화공으로 하여금 다시 그리게 했던 듯싶다.

‘봉사도’에 태극기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좋을 두 종류의 표현이 눈에 띈다. 하나는 조선 관원들이 홍제원에서 청나라 사신들을 맞아들이는 장면이다. 양쪽으로 의장대가 에워싸듯 도열하고 있는데 삼각형 깃발을 들고 있다. 조선을 상징하는 태극 깃발과 청나라를 상징하는 황룡(黃龍) 깃발이다. 태극기처럼 청나라의 삼각 황룡기도 훗날 대청국기(大淸國旗)인 용기(龍旗)로 발전했다고 한다.

청나라 사신이 머무는 영빈관을 묘사한 다른 그림에서는 커다란 휘장을 담장 밖에 걸어 놓았다. 장대로 세우고 긴 줄로 고정시킨 휘장에는 태극을 중심으로 건곤감리의 리와 감 문양이 아래위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 태극이괘도(太極二卦圖)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태극기는 1882년(고종 19)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에 쓰인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지만 태극이괘도는 그 원형으로 봐도 무리가 없겠다.

삼일절은 ‘태극기 다는 날’이다. 하지만 태극기가 요즘에는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새로 짓는 아파트에는 국기 게양대를 만들지 않는다. 태극기를 파는 곳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애꿎게 이념 대립의 희생양이 되어 빛바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23-03-01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 여러분은 만족한가요?
15년 만에 단행된 카카오톡 대규모 개편 이후 사용자들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수 있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는 “역대 최악의 업데이트”라는 혹평과 함께 별점 1점 리뷰가 줄줄이 올라왔고, 일부 이용자들은 업데이트를 강제로 되돌려야 한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카카오는 개선안 카드를 꺼냈다. 이번 개편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1. 개편 전 버전이 더 낫다.
2. 개편된 버전이 좋다.
3. 적응되면 괜찮을 것 같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