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수출 의존도 큰 호주·뉴질랜드·캐나다 ‘빨간불’
원자재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큰 국가들이 경제적 혼란에 빠지고 있다.국제 원자재 가격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오르는 이른바 ‘슈퍼사이클’이 끝났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은 한국기업들의 비용절감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하락 자체가 글로벌 경기부진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 수출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22일 국제 원자재시장 등에 따르면 22가지 원자재 바스켓으로 구성된 블룸버그 원자재 지수는 지난 20일 현재 1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달러화 강세에다 에너지와 금속 및 농산물의 풍부한 공급이 원자재 가격 하락의 배경이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원자재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가격 하락은 기업에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심혜정 연구원은 전체 수입에서 원유 수입비중만 13%나 된다면서 수입단가가 떨어지면 비용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엔저나 유로환율 약세로 (우리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원자재 가격 하락이 채산성 제고나 비용 절감에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비용 절감분을 투자나 상품 개발 등 경쟁력 제고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심 연구원은 그러나 원가 절감이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유가가 이미 크게 떨어졌는데도 아직 제품 가격 하락 등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달리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에는 빨간 불이 켜졌다.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달러 등 이른바 세 ‘상품통화(commodity currency)’는 최근 6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고 올해 낙폭이 10~15% 수준에 이른다.
호주는 철광석의 최대 수출국이며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각각 에너지와 낙농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전형적인 원자재 수출국이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 경제는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는 중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동하고 있어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주는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제 2의 그리스’가 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다.
지난 19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호주가 ‘석유달러’에 의존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닮은꼴이라고 지적했다.
철광석과 석탄 가격의 하락, 대형 광산회사의 투자 축소 등이 호주 경제의 약점을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철광석가격은 톤(t)당 50달러에 거래돼 2011년에 기록한 최고치 180달러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발전용 석탄의 가격은 4년 전 톤당 150달러였던 것에서 최근에는 60달러 부근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 4월 호주의 무역적자는 41억4천만호주달러(3조5천억원)로 집계돼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정부 지출을 유지하려면 차입에 대한 의존도를 늘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호주의 저명한 경제학자 스티븐 쿠쿨라스는 이 나라의 외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미래 세대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뉴질랜드는 이미 지난달 정책금리를 인하하며 경기 부양에 나섰다.
그레이엄 휠러 뉴질랜드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낙농제품 가격이 더 하락할 전망이라면서 이것이 경제에 역풍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델텍 인터내셔널그룹의 아툴 렐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의 성장 모멘텀이 여전히 취약하며, 전반적인 성장세는 더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결국 가계와 다른 자산에 걸친 차입축소(디레버리징)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결국 통화 공급을 통한 부양책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고 진단했다.
뉴질랜드중앙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웨스트팩은행은 뉴질랜드중앙은행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2%로 지금보다 1.25%포인트나 더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캐나다 경제는 호주나 뉴질랜드보다는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
스코샤은행은 “캐나다의 회복세는 하반기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하락의 충격이 이미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의 쿤 고 아태전략 책임자는 “캐나다에 한가지 특전은 최대 교역 상대국인 미국 경제가 반등세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중국 경제가 둔화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