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고 이기백 서강대 교수가 창간한 역사학 대중잡지 ‘한국사 시민강좌’(이하 시민강좌)가 25년만에 통권 50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됐다.
시민강좌는 잡지 편집위원회 명의로 최근 발간된 50호 첫머리에 부친 ‘종간사’를 통해 “이제 50호를 끝으로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잡지는 1987년 8월 창간호를 낸 이래 반년간지 체제를 유지하면서 25년을 지탱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난으로 출판계 사정이 악화하면서 줄곧 출판을 맡아온 일조각에서 “더 이상 잡지를 내기 힘들다”는 말을 듣기에 이르렀다.
편집위원회는 “창간 이래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편집위원들도 노경으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후진들에게 ‘시민강좌’의 순수성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 잡지를 떠맡기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이중고의 부담을 안겨준다고 여겨졌다”고 말했다.
시민강좌는 1980년대 이기백 교수가 당시 역사학계에 득세하던 민중사관이 민족을 앞세워 객관적 역사탐구를 저해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에 맞서고자 일조각과 손잡고 창간했다. 그래서 이 잡지는 시종 ‘역사의 진리’를 강조했다.
이른바 진보파에 대항한다는 출범 정신이 그랬듯이 잡지는 필연적으로 보수성을 띨 수밖에 없었으며 좌우 분열이 극심한 2000년대 접어들어서도 보수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곤 했다. 이번 종간호 또한 ‘대한민국을 가꾼 사람들’이라는 대규모 특집이 그런 특징을 잘 대변한다.
초창기에는 이기백 교수와 그의 제자들인 유영익(연세대) 민현구(고려대) 이기동(동국대) 이태진(서울대) 홍승기(서강대) 교수가 편집진 주축을 이뤘다.
창간호 특집인 ‘식민주의 사관 비판’과 2집 특집 ‘고조선의 제문제’는 학계 반응이 뜨거워 이를 통해 발표한 관련 논문은 현재도 이 문제를 다루는 논저에서는 빠지지 않고 인용된다.
잡지는 35집이 나올 무렵인 2004년 6월2일 이기백 교수가 타계함으로써 분기점을 맞아 그의 후학들이 돌아가면서 각 호를 책임편집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이기백 교수 타계 직전인 2004년 4월30일에는 일조각 창업주인 한만년 사장까지 타계함으로써 이후 ‘시민강좌’에 대한 열기는 점점 시들기 시작해 결국 종간에 이르렀다.
연합뉴스
시민강좌는 잡지 편집위원회 명의로 최근 발간된 50호 첫머리에 부친 ‘종간사’를 통해 “이제 50호를 끝으로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잡지는 1987년 8월 창간호를 낸 이래 반년간지 체제를 유지하면서 25년을 지탱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난으로 출판계 사정이 악화하면서 줄곧 출판을 맡아온 일조각에서 “더 이상 잡지를 내기 힘들다”는 말을 듣기에 이르렀다.
편집위원회는 “창간 이래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편집위원들도 노경으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후진들에게 ‘시민강좌’의 순수성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 잡지를 떠맡기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이중고의 부담을 안겨준다고 여겨졌다”고 말했다.
시민강좌는 1980년대 이기백 교수가 당시 역사학계에 득세하던 민중사관이 민족을 앞세워 객관적 역사탐구를 저해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에 맞서고자 일조각과 손잡고 창간했다. 그래서 이 잡지는 시종 ‘역사의 진리’를 강조했다.
이른바 진보파에 대항한다는 출범 정신이 그랬듯이 잡지는 필연적으로 보수성을 띨 수밖에 없었으며 좌우 분열이 극심한 2000년대 접어들어서도 보수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곤 했다. 이번 종간호 또한 ‘대한민국을 가꾼 사람들’이라는 대규모 특집이 그런 특징을 잘 대변한다.
초창기에는 이기백 교수와 그의 제자들인 유영익(연세대) 민현구(고려대) 이기동(동국대) 이태진(서울대) 홍승기(서강대) 교수가 편집진 주축을 이뤘다.
창간호 특집인 ‘식민주의 사관 비판’과 2집 특집 ‘고조선의 제문제’는 학계 반응이 뜨거워 이를 통해 발표한 관련 논문은 현재도 이 문제를 다루는 논저에서는 빠지지 않고 인용된다.
잡지는 35집이 나올 무렵인 2004년 6월2일 이기백 교수가 타계함으로써 분기점을 맞아 그의 후학들이 돌아가면서 각 호를 책임편집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이기백 교수 타계 직전인 2004년 4월30일에는 일조각 창업주인 한만년 사장까지 타계함으로써 이후 ‘시민강좌’에 대한 열기는 점점 시들기 시작해 결국 종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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