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연 ‘프로즌’ 개막
딸을 죽인 연쇄살인범을 엄마는 용서할 수 있을까. 증오가 증오를 낳는 지금의 사회에서 답은 당연히 ‘아니요’일 것 같지만, ‘용서’는 생각보다 복잡한 맥락 위에 놓여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남을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때로는 용서가 복수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연극 ‘프로즌’은 넌지시 일러준다.
영국 극작가 브리오니 래버리의 대표작으로 국내 초연되는 ‘프로즌’은 마니아 관객들의 지지를 받는 극단 맨씨어터와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정평이 나 있는 김광보 연출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개막 전 모든 회차의 티켓이 매진될 정도였다. 뚜껑을 연 ‘프로즌’은 단출하고 간명했다. 죄책감과 용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극한의 심리전(戰) 속으로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데에 세 배우의 연기 외에 다른 어떤 장치도 필요하지 않았다.
딸을 잃은 채 20년 동안 고통 속에 스스로를 밀어넣은 엄마 낸시,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기억이 소아성애로 발현된 연쇄살인범 랄프, 그와 같은 연쇄살인범을 연구하며 스스로도 불륜으로 인한 죄책감을 짊어지고 있는 정신과 의사 아그네샤는 저마다 얼어붙은 가슴을 부여잡고 살아간다. 극 초반 30분간 각각의 독백이 펼쳐지는데, 무대 한가운데에 놓인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배우들은 퇴장하지 않고 다른 배우의 이야기를 듣는다. 포효하는 절규에 머리를 감싸 쥐거나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의 고통을 더해 간다.
20년이 지나 낸시는 랄프를 용서하지만, 난생 처음 용서를 받은 랄프는 오히려 더 큰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이끈다. 용서를 하는 것보다 용서를 받는 게 더 고통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지점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김광보 연출과 우현주, 이석준, 정수영 등 극단 맨씨어터 배우들의 열연이 맞물려 절제되면서도 뜨거운 연극이 탄생했다. 7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전석 3만 5000원. (02)744-7661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5-06-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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