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한국이 망했다… 아! 한국 국민” 조선의 운명 목도한 중국 지식인의 통탄

“아! 한국이 망했다… 아! 한국 국민” 조선의 운명 목도한 중국 지식인의 통탄

입력 2014-08-09 00:00
수정 2014-08-09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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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량치차오 지음/최형욱 옮김/글항아리/284쪽/1만 5000원

“아! 한국이 망했다. 아! 한국이 완전히 망했다.”(1907년 10월 7일)

“아! 이제 조선은 명실상부하게 멸망했다. (중략) 다시는 문자가 없고, 다시는 군주가 없고, 다시는 정부가 없고, 다시는 민족이 없고…거꾸러진 치욕적인 역사의 흔적만 남게 되었다.”(1910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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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치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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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식인 량치차오는 20세기 초 조선이 스러지는 모습에 비탄하면서 자국민의 자각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 육군대장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3대 조선 통감으로 부임(①)한 뒤 조선의 격변을 소개하고, 양반(③)을 망국의 원인으로 꼬집어 신랄하게 비판했다. 량치차오는 안중근 의사의 기절(奇節)을 칭송하며 이토 히로부미의 유신을 높이 사지만 무덤만큼은 최고의 충(忠)을 실천한 안 의사와 나란히 하고 싶다(‘가을바람이 등나무를 꺾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통감부에서 배포한 안 의사의 사진(②). 글항아리 제공
중국 지식인 량치차오는 20세기 초 조선이 스러지는 모습에 비탄하면서 자국민의 자각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 육군대장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3대 조선 통감으로 부임(①)한 뒤 조선의 격변을 소개하고, 양반(③)을 망국의 원인으로 꼬집어 신랄하게 비판했다. 량치차오는 안중근 의사의 기절(奇節)을 칭송하며 이토 히로부미의 유신을 높이 사지만 무덤만큼은 최고의 충(忠)을 실천한 안 의사와 나란히 하고 싶다(‘가을바람이 등나무를 꺾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통감부에서 배포한 안 의사의 사진(②).
글항아리 제공
문장에 통한이 가득하다. 글마다 묻어나는 탄식은 망국민의 그것이 아니라 열강에 유린당한 조선을 바라본 중국 지식인 량치차오의 격정이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격동의 중국 근대 전환기에 시대를 주도해 나간 유신파 계몽주의 지식인의 대표 이론가이자 중국의 중요한 진보 정치사상가다. 1897년 조선 언론에 처음 소개된 그는 신채호, 박은식, 장지연 등 개화와 자강을 주장하던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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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조선에 관한 글을 쏟아낸 때는 1904~1911년이다. 일본이 끈질기게 조선에 침투해 결국 손아귀에 넣는 것을 지켜보며 “춥지도 않은데 전율을 느낀다”고 통탄했고 “한국이 망한 것은 한국 황제가 망하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득의양양하게 나라를 팔아 이득을 얻고도 깨닫지 못하는” 양반(이후 귀족과 친일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신간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는 그의 전집에서 조선에 관한 글을 추려 모은 책이다. 1904년 9월 24일에 쓴 ‘조선망국사략’부터 ‘아! 한국, 아! 한국 황제, 아! 한국 국민’ ‘조선 멸망의 원인’ ‘일본병탄조선기’ 등을 다룬다. 조선의 유린은 그에게 동병상련의 비극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 제국주의 세력의 패권 싸움으로 수난을 당한 것은 조선이나 중국이나 매한가지였다. 더 내밀한 곳에는 중화주의를 수용한 조선을 일본에 빼앗긴 것에 대한 동정심과 안타까움, 조선을 사례로 삼아 자국 인민에게 교훈을 주려는 의도도 혼재한다.

조선을 향한 그의 감정은 복잡하지만 조선 멸망의 원인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다. 무능한 지도자와 부패한 관료(양반)들에게 원인이 있다고 본 것이다. 량치차오는 “무릇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정벌한 연후에 남이 정벌한다.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은 사실 궁정에 있다”며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자질을 따졌다. 사리 판단이 어렵고 결단력이 부족한 고종의 뒤에서 “음험하고 사나운 성질”을 가진 대원군이 주권자가 된 것을 한국 혼란의 배경이라고 했다. 또 “이른바 ‘양반’이라는 자들이 나라의 정치·사회·생계상의 세력을 모두 농단했다”면서 “나라에서 관리를 두는 것은 국사를 다스리기 위함인데 조선에서 관리를 두는 것은 오직 직업 없는 사람들을 봉양하기 위함”이라 조롱하고, 남종·북종·노론·소론 등으로 파벌 다툼을 일삼고 백성을 갈취한다고 비판한다.

조선을 냉철하게 분석한 그가 긍정적으로 꼽은 인물은 안중근 의사다. “조선에서 1000만명 중 1명 있을까 말까 한 인물”로 평가하며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장면을 비장하게 묘사한 시 ‘가을바람이 등나무를 꺾다’를 쓰기도 했다.

량치차오의 글은 명쾌하고 호방하다. 그런데 읽을수록 서늘함이 느껴지는 것은, 100년 전 조선에서 오늘날 한국이 언뜻 비치는 탓이다. 지도층의 자질과 국가의식 부재에 대해 량치차오가 글에서 중국인에게 던진 말을 꺼내 들게 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2014-08-0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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