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이 ‘에이즈(AIDS) 월드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개막 전부터 우려되는 일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인구의 10%가 에이즈(AIDS)에 감염되어있다는 통계가 있는 만큼 남아공 현지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성병 예방을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남아공의 대통령은 월드컵 직전 영국을 방문, 5000만 개에 달하는 콘돔의 지원을 받아낸 바 있습니다. 성병 확산을 막기 위해 대통령까지 나서다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남아공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시 월드컵 기간 중 성병에 감염되기 쉽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됩니다.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 성관계를 가진 뒤 ‘월드컵 베이비’를 얻은 사례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2002월드컵 이듬해인 2003년 봄 출산이 10% 정도 증가한데다 미혼모 복지기관에 상담 전화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콘돔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약 성관계 당사자들 중 성병 감염자가 있었다면 그 결과는 ‘베이비’가 아니라 매독이나 임질 등으로 이어졌겠지요. 이런 성병은 콘돔의 착용 여부에 따라 감염 확률이 극과 극을 달리는 만큼, 즉흥적인 성관계일수록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성병은 대체로 남성보다 여성 쪽이 감염될 확률이 높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성관계시 분비물을 받아내는 쪽이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성기 등이 몸 깊숙이 위치하고 있어 병이 웬만큼 진행되기 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따라서 콘돔의 착용은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들 역시 적극적으로 챙겨야 하는 사랑의 필수품인 셈입니다.
이외에도, 월드컵 기간 중 빈번한 거리 응원 역시 성병이 옮겨지기 쉬운 환경을 조성합니다. ‘성관계를 하지 않았는데 웬 성병?’ 싶겠지만, 성병은 성관계를 통해서만 전염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헤르페스’가 있는데요, 이는 신체 피부 접촉만으로도 전염이 가능한 성병입니다. 게다가 그 증상 역시 성기에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입 주변이나 구강 내 염증이 생기는 것이 시발점인 경우가 많아 초기 치료시기를 놓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간혹 성병임을 바로 알았다 하더라도 부끄러운 마음에 병원을 찾기 꺼리는 바람에 병을 키워서 오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모든 병은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고, 성병도 예외가 아닙니다. 또한 일단 발병하고 난 뒤에는 지체하지 말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어설프게 자가 치료를 시도하다가는 병을 더 키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국이 이기고 진 그리스전(12일)과 아르헨티나전(17일)에서 모두 콘돔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사랑을 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축구 선수들이 90분간의 경기를 뛰기 위해 4년을 기다려 준비해 온 것처럼 말입니다.
글: 비뇨기과 전문의 임헌관(연세크라운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