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난 사람] 불임 치료의 권위자 김정훈 박사

[이달에 만난 사람] 불임 치료의 권위자 김정훈 박사

입력 2012-07-01 00:00
수정 2012-07-0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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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을 치료하는, 나는 ‘풀코스 의사’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의 김정훈 박사(52세)는 자신을 거쳐 간 수천 명의 환자를 거의 모두 기억한다. 쉽게 치료한 환자는 있어도 쉽게 잊힌 환자는 없다. 아이를 바라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품에 안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든 부모에게 똑같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눈빛만 봐도 이 사람은 정말 착하구나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이렇게 착한 사람이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할까 가슴이 메어요. 성품과 불임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그렇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친구가 생각났다. 그녀는 이번 달에도 생리가 시작됐다면서 발개진 눈을 하고는 한낮에 맥주를 들고 왔다. 몇 년을 기다려도 아기가 오지 않으니 이젠 포기하겠다고, 병원을 바꾸는 것에도 지쳤다고. 그 친구가 김정훈 박사의 병원을 찾았다면 조용한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자신을 찾는 환자의 90%가 다른 병원에서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라는 김정훈 박사는 자리에 앉아 환자의 이름을 크게 외치는 대신 가만가만 곁에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부른다고 했다.

정답은 1번 정액 검사

1992년부터 생식내분비?불임 전임의를 맡았던 김정훈 박사는 20년이 훨씬 넘게 관련 분야를 연구해온 불임 치료 분야의 권위자다. 그는 시험관 아기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에 이미 불임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불임 진단을 위한 검사를 시작할 때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전에는 여성에게 문제가 없어 남편도 와야겠다고 말하면 화를 내거나 펄쩍 뛰었어요. 하지만 불임 치료는 부부가 함께 시작해야 해요. 지금 제가 학생들 시험 문제를 내고 있는데, 마침 그 문제도 있어요. 다음 중 불임 검사를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검사는? 답은 1번 정액 검사. 최우선 검사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정액 검사거든요.” 불임은 수치도 아니고 죄도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그는 안타깝다.

김정훈 박사가 안타깝게 여기는 다른 한 가지는 질병을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해 불임이 되는 경우이다. “월경 시작된 지 1년이 넘은 아이들이 생리 불순이나 월경통을 겪는데도 어른들은 크면 좋아진다고만 해요. 그런데 안 좋아져요. 그건 불임을 막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거예요.” 나팔관의 소통과 수정란의 착상, 임신 유지 등 임신의 모든 단계를 방해하는 자궁내막증이라는 병이 있다. 그런데 그 병의 주요 증상이 월경통과 성교통이다. 초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불임을 막을 수 있는데 생리에 따르는 통증을 당연하게 여기는 습관이 불행을 부르는 것이다. “저는 좋은 치료는 병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항상 강조합니다. 불임뿐만 아니라 모든 병이 그래요.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에 기반한 중?장기적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죠.”

그러나 불임의 가장 큰 원인은 유전이다. 예전에는 원인 불명의 불임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불임의 상당수가 유전자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환자들 중에는 가족이 많다. 세 자매가 나란히 치료를 받기도 하고, 아주머니였던 환자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여성 3대가 함께 병원을 찾기도 한다. “임신에 성공한 환자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근처 병원을 권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면 제가 계속 치료해요. 그러다 보니 오래 만나는 환자가 많은 거죠.” 그래서 그는 자신을 ‘풀코스 의사’라고 부른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어머니가 산부인과 의사이긴 했지만 김정훈 박사는 특별한 매력을 느껴 산부인과를 택한 건 아니었다. 역시 의사였던 아버지의 동기가 김정훈 박사가 다닌 학교의 산부인과 교수였기에, 친구의 아들을 특별히 돌봐주었다. 아버지를 욕보일 수 없어 김정훈 박사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진로는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김정훈 박사는 영화 <산부인과>나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 등장하는,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생명을 맞아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예전엔 여성 환자 대신 시험관을 만나며 살았기에 수줍음 많은 청년 시절에도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그에게, 다른 산부인과 의사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다른 의사들은 다 만들어 놓은 아이가 태어나도록 돕기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기도 전부터 진료를 시작해서 사후관리까지 맡는 거니까, 다른 보람이 있어요.” 그가 풀코스 의사인 또 하나의 이유이다.

그 풀코스 의사는 여전히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고 실험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출산 연령이 높아지고 환경 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원발성 불임(한 번도 임신한 적이 없는 사람의 불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두 가지 원인 모두 환자 본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김정훈 박사는 색다른 해결책 한 가지를 제안했다. “환경 호르몬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결혼은 조금 빨리 해도 되지 않겠어요? 시작부터 전부 갖추고 그걸 누리면서 살려고 하니까 결혼을 늦게 하는 거지, 옛날처럼 하나씩 사 모으면서 살아가겠다고 생각하면 조금 빨리 할 수도 있잖아요.” 세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10년 전에 골프를 끊었다는 아버지다웠다. 그런 마음이 그 많은 환자를 하나하나 기억하는 놀라운 기억력의 원동력일 것이다.



글 김현정 기자 사진 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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