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쿠바 한족단’ 광복후원... 쿠바 독립운동가들 흔적이 사라져간다

‘재쿠바 한족단’ 광복후원... 쿠바 독립운동가들 흔적이 사라져간다

입력 2015-08-12 10:08
수정 2015-08-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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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택의 마탄사스 지방회관 현지인에 넘어가 창고로 쓰이고 기념비조차 없어

쿠바에 있는 해외독립운동의 흔적들이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진 곳에 마탄사스 주 마탄사스 시에는 쿠바에서 독립운동과 한인 교육활동을 한 임천택(에르네스토 임. 1903∼1985)선생의 자택이자 마탄사스 지방회관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에는 다른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글로 민족 혼을 일깨우고 조국 독립의 의지를 고취했던 지방회관 건물은 당시 나무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시멘트로 된 낡은 창고 건물로 바뀌었고 주인도 현지인이다.

임 선생은 1921년 3월25일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에네켄(선박용 밧줄의 원료로 쓰이는 선인장) 농장에서 4년간에 걸친 고난의 노예 이민 생활을 끝내고 더욱 나은 삶을 찾아 320여명의 현지 이민자들과 함께 마탄사스에 정착했다.

이어 대한인 국민회와 한글학교를 설립하고 고된 삶 속에서 독립운동 자금 마련 등 광복 운동을 후원했다.

임 선생을 포함한 쿠바 이민 1세대들은 첫발을 디딘 동부 마나티 항구 마을에서 사탕수수 수확 일을 하다가 1921년 5월 마탄사스로 건너가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면서 시 외곽 4㎞ 떨어진 ‘엘 볼로’라는 서로 의지하면서 한인촌을 형성했다.

엘 볼로에 모여 살던 한인들이 마탄사스 시내로 들어오면서 임 선생의 자택은 1943년부터 1952년까지 지방회관으로서 역할을 했다.

한인 후손 200여 명 안팎이 거주하는 마탄사스에 사는 임 선생의 3녀 마르타 임(77.임은희) 여사는 “한국과 수교가 이뤄졌더라면 지방회관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마찬가지로 임 선생이 엘 볼로에 세운 한글학교이자 교회 터도 방치된 채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마탄사스 지방회관과 한글학교가 있었던 곳에는 기념비 등 한인 이주민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표시조차 없다.

다만, 엘 볼로 마을 입구에는 2005년 미국 시애틀 한인연합장로교회의 도움으로 세워진 한인 이주 기념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임 선생은 1925년 한인촌에 민성국어학교를 설립해 교사로 활동하는가 하면 1930년대에는 청년학원과 대한여자애국단 쿠바지부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두 살 때인 1903년 어머니와 함께 유카탄으로 건너와 16년간 한인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친 것이 전부였으나 쿠바에서의 한인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임 선생은 마탄사스, 카르데나스 등지에 흩어진 한인지방회를 규합해 ‘재쿠바 한족단’을 결성한 뒤 1934년부터 상하이 임시정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광복운동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임 선생이 지난 1953년 기록한 ‘큐바한인이민력사’가 1995년 공개되면서 그의 독립운동의 역사가 한국에 처음으로 제대로 알려졌다.

임 선생이 결성한 대한인 국민회는 1937년 10월∼1939년 2월 360원52전을 모금해 국민총회로 송금했고 1940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광복군 후원금으로 78원30전, 41년 10월부터 1944년까지 독립자금 명목으로 858원88전을 국민총회로 송금했다.

또 독립자금 246원5전을 중국은 은행을 경유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에게 직접 송금하기도 했다.

당시 에네켄 농장에서 하루 임금 7∼8원을 받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인 지방회 회원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악착같이 정성을 모았다.

마르타 임 여사가 재외동포재단의 후원으로 2004년 저술한 ‘쿠바의 한국인들’이라는 책에는 한인 노동자들이 매달 월급의 5%를 독립운동 지원금으로 적립했다고 나와 있다.

민족혼을 고취하고자 민족주의 종교인 천도교를 공부한 임 선생은 마탄사스에 정착한 지 9년 만에 인근 카르데나스 지역에 천도교회를 세웠으나 이후 본국의 중앙 종리원이 일제에 협력하는 경향이 나타나자 과감히 인연을 끊었다.

쿠바의 한인들은 매년 백일과 회갑, 3·1절을 지켰다고 한다.

3·1절은 애국심을 고양하고 한국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일본에 항거했던 날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었다.

마탄사스 시내의 한적한 가옥에 있는 마르타 임 여사의 집에는 아버지를 대신해 받은 건국 훈장과 초상화, 소지품, 청년 시절의 사진 등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에는 고국과 가장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쿠바에서도 광복을 위한 후원이 됐다고 서술돼 있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그가 쓴 기록이 공개되자 국가보훈처는 독립자금 모금과 동포의 권익 보호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고, 그의 유해는 2004년 4월 국내로 봉환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작년 말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합의에 이어 한국 정부도 쿠바와 수교에 적극적으로 나선 가운데 머나먼 땅의 이주민들이 고달픈 생활 속에서 고국의 독립을 위해 애쓴 역사의 흔적을 기리고 보존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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