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아 교육학 박사·숭실대 초빙교수
‘서울의 휴일’에서 덕수궁길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탄 검은색 세단이 달려간 길이었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덕수궁 돌담길이 신기하기만 했다. 일행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길 때 사용한 ‘고종의 길’ 반대편으로 걸었다. 이 길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대사관에 의해 막혀 있던 길이었다. 덕수궁길이 59년 만에 온전히 이어졌다.
미래유산인 세실극장이 우리를 반겼다. 지금은 서울시가 인수해 장기 임대를 주는 형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시의 ‘문화재생’ 정책 덕분에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으로 공연과 민주화의 역사를 간직한 세실극장을 계속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서울광장에 들어섰더니 비는 오지 않았지만 광장 안의 잔디는 촉촉했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을 걸으니 발에 닿는 감촉이 발걸음을 흥겹게 했다. 그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던 서울광장의 터를 조성한 사람은 고종 황제라고 한다. 비운의 황제는 이 터를 조성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분의 혜안 덕분에 민주화의 상징이 된 이곳에서 지금 흥겹게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황제의 사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인 서울광장을 지나 황궁우를 만났다. 환구단 자리엔 조선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영화 속에서 남편인 송 기자를 기다리는 아내 남희원이 맥주를 마시는데 그 장면에서 황궁우가 살짝 보인다. 조선호텔을 지나 상동교회에서 길을 건너 남대문시장을 통과하니 숭례문이 우리를 반겼다. 숭례문이 보이는 곳에서 해설사는 영화의 마지막 스토리를 들려줬다. 흥미롭고 귀중한 시간이었다.
박정아 교육학 박사·숭실대 초빙교수
2019-07-04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