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편들기할 듯…의장성명 신경전 예고
한.미 양국이 북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에 대해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을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기상도가 맑지만은 않아 보인다.무엇보다도 중국이 걸림돌이다. UEP를 안보리로 가져가는데 강한 거부반응을 보여온 중국이 한.미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중국의 입장은 이미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위원회 UEP 보고서 채택 논란 때 명료히 드러났다.
중국은 상임이사국 5개국(P5) 가운데 미.영.프가 보고서 채택을 지지하고 러시아까지 찬성하는 ‘포위구도’ 속에서도 보고서 채택에 명시적으로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안보리 대응을 피하고 6자회담 무대로 끌고가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는 게 안보리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특히 중국은 이번달 안보리 순회 의장국이다. 직접적으로 논의를 좌우할 권한은 없지만 의사일정 조정 등을 통해 전반적인 논의의 흐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외교가에서는 과거의 전례를 감안해 중국이 또다시 ‘물타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 대응과정이 단적인 예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 이후 정부는 6월4일 안보리 의장에 서한을 보내는 형식으로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고 의장성명 문안 조율에 착수했다.
당시 한.미.일은 천안함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중국이 대북규탄에 동참하도록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으나 중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골적인 북한 편들기를 계속했다. 이에 따라 7월9일 안보리 이사국 만장일치로 나온 의장성명은 중국의 물타기가 작용한 ‘짜깁기’식 결과물이었다.
천안함 폭침을 ‘공격’으로 규정하고 ‘규탄’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정작 공격의 주체를 북한으로 적시하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결국 국내에서는 안보리 대응조치에 실망하는 기류가 팽배해지면서 ‘안보리 무용론’까지 대두됐고 이는 연평도 사건에 대한 대응과정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지난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도 우리 정부는 안보리 무대에 호소했으나 역시 신중론을 내세운 중국의 물타기 전략으로 인해 어정쩡한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수준에 그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이번 UEP 대응과정에서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앞세워 북한을 규탄하는데 반대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중국이 지난 1월19일 미.중 정상회담 공동성명 문안에서 UEP에 대해 ‘북한이 주장하는’(the DPRK’s claimed) 이라는 표현을 고집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관측이다.
물론 UEP 문제는 천안함 사건과는 달리 중국의 노골적 북한 편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사안은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 및 1718호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안보리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높아 중국으로서는 외교적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천안함 사건 당시 중국과 공동보조를 취했던 러시아가 UEP 문제에 관해서는 안보리 대응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천안함 때와 같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가 재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볼 때 중국으로서는 북한 UEP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북한을 직접 규탄하는 것은 피하는 ‘절충형’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분석된다.
다시말해 지난달 19일 미.중 정상회담 공동성명 수준을 되풀이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중은 당시 공동성명에서 “중국은 북한이 주장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며 “양측은 9.19 공동성명과 국제적 의무.약속에 위배되는 모든 행동들에 반대한다”고 밝혔었다.
한.미 양국은 당초 공동성명에 북한을 규탄한다는 내용을 짚어 넣으려고 했으나 중국이 북한의 UEP 문제에 대해 아예 언급 자체를 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면서 이 같은 절충문안이 나왔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한.미의 안보리 의장성명 추진으로 인해 6자회담 재개 흐름은 안보리 대응 이후로 속도조절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는 안보리 무대에서 UEP의 성격규정을 한 이후에 6자회담 재개에 나서는 ‘선(先) 안보리, 후(後) 6자재개’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미의 안보리 대응이 의장성명 도출 자체 보다도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이 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전향적으로 나서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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