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도 北도 울었다…또다시 생이별

南도 北도 울었다…또다시 생이별

입력 2014-02-25 00:00
수정 2014-02-2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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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안내원 “이럴 때 눈물 안 나면 조선 사람 아니지요”

“오빠, 오빠, 우리 오빠, 나 오빠 없이 어떻게 살지…”

남쪽 이산가족 박종분 씨는 버스에 오른 북쪽 오빠 박종성(88) 씨가 차창 밖으로 내민 손을 잡고 통곡했다.

6·25 전쟁 통에 헤어져 죽은 줄 알고 제사까지 지냈던 오빠였다. 그런 오빠를 살아서 만난 꿈 같은 시간이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오빠 박 씨는 종분 씨를 비롯한 여동생 3명에게 “동생들아, 건강해라, 건강하면 또 만난다”고 달래며 눈물을 흘렸다.

이산가족 2차 상봉 마지막날인 25일 이산가족들은 금강산호텔에서 약 1시간 동안 ‘작별 상봉’을 한 데 이어 호텔 앞에서 또다시 눈물바다를 이뤘다.

1차 상봉 때와는 반대로 북쪽 가족들이 먼저 버스에 올랐고 남쪽 가족들은 밖에 서서 이들을 배웅했다.

이산가족들은 작별 상봉이 10분 후면 끝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무정하게 흐르는 시간을 야속해하며 곳곳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북쪽의 김태운(79) 씨는 남쪽 언니 사분 씨를 끌어안고 “아이고, 우리 언니, 아이고, 우리 언니”라고 외치며 통곡했다.

북쪽 남궁렬(87) 씨는 이제 머리가 하얗게 샌 남쪽 딸 봉녀 씨에게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쟁 통에 헤어지던 날 한 살배기였던 딸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남쪽 조도순 씨는 북쪽 오빠 조원제(83) 씨를 꼭 끌어안은 뒤 기약 없이 떠나는 오빠에게 큰절을 올렸다.

’고향의 봄’, ‘아리랑’같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민족의 정서가 배인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이산가족들도 많았다.

북쪽 가족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자 남쪽 이종신(74) 씨는 “형님 한번 업어 드려야지”라며 북쪽 형 종성(85) 씨를 등에 업고 나갔다.

북쪽 가족들이 버스에 오르자 남쪽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차량에 달라붙어 차창 너머로 혈육의 손을 마지막으로 꼭 잡았다.

휠체어를 타고 온 남쪽 박금화 씨는 북쪽 언니 계화(82) 씨의 손을 잡기 위해 기어이 두 발을 딛고 섰다. 금화 씨는 “언니, 잘 가세요, 아빠도 엄마도 기뻐하실 거야”라며 울먹였다.

이산가족도, 안내원도, 남쪽도, 북쪽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북한 적십자회 배지를 단 안내원은 “이럴 때 눈물 안 나면 조선 사람 아니지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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