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DJ 평민당 창당후 호남 민심은 정통 야당 전폭 지지 열린우리당 창당 분열했지만 총선·대선서 한곳 지지 몰아줘
정치사의 주요 국면마다 통합을 외치며 민주세력에 힘을 모아줬던 야권의 본산 호남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갈래갈래 나뉘게 됐다.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 세력은 지금까지 분열과 통합의 역사를 반복했지만, 호남의 지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안철수·천정배 의원 등 신당 세력의 출현으로 제1야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등 호남이 고민하는 모습이다.
군부 독재라는 공통된 적에 맞서 단일대오를 유지해온 민주세력은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야권 진영의 본격적 분열을 경험했다.
DJ는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자 탈당,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비록 대선에서 3위를 기록했지만, 이듬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호남의 강한 지지를 등에 업고 70석을 확보, 제1 야당의 자리를 쟁취했다.
1992년 대선에서 YS에 패배한 DJ는 당시 제1야당인 민주당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다 탈당,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때 민주당 소속 의원 95명 중 65명이 탈당해 신당에 참여했다.
호남은 새정치국민회의로 간판을 바꾼 민주세력에 다시 강한 지지를 보냈고, 1997년 대선에서 DJ가 당선됐다.
호남은 2002년 대선에서도 부산 출신의 노무현 후보에게 몰표를 주며 정권 재창출에 기여했다.
이듬해 친노(친노무현)를 주축으로 한 창당파가 ‘100년 전국정당’을 표방하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친노와 호남의 관계가 악화됐지만, 열린우리당이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탄핵 역풍’에 힘입어 제1야당이 되고, 구민주계의 새천년민주당이 의석 9석의 ‘꼬마 민주당’으로 전락하면서 열린우리당이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2007년 대선 전망이 어두워지자 민주당 탈당파와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까지 끌어모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당,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호남민심을 대변하는 하나의 단일 대오를 재구축했다.
2012년 대선에서도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당명이 민주당, 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여러 번 바뀌었어도 호남은 야당의 든든한 지지기반으로 단일 대오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호남향우회 일부 세력이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해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 합류를 선언하고 동교동계의 안철수 신당 합류까지 점쳐지는 등 호남이 처음으로 분열할 조짐이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2003년 열리우리당 창당 때와 달리 이번에는 호남 세력이 먼저 개혁을 부르짖으며 당을 나가는 모양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