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가 중대사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잠시 내려놨던 ‘사정의 칼’을 다음주부터 다시 움켜쥘 태세여서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던 정치권과의 마찰이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민주당이 11일 의원총회에서 청원경찰 입법로비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거부하겠다는 당론과 소환에 불응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가운데,검찰은 의원들의 소환 시기는 다소 늦출 수 있어도 수사 자체의 당위성 부분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은 부실수사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민간인 사찰과 ‘대포폰’ 의혹의 재수사를 요구하면서 압박을 강화하는 반면,검찰은 현 상황에서 재수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면서 대립각을 더욱 곧추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청목회의 입법로비 의혹에 연루된 의원들의 후원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데 대한 정치권의 반발에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8일 “국민은 검찰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의연하게 대처하라”며 정면돌파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청원경찰법 입법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태철)는 관련 의원들의 소환 시기를 애초 G20 정상회의 직후인 다음주 초로 잡았다가 이달 중순 이후로 다소 늦춘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민주당이)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방침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 조사가 다소 늦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소환을 거부하는 의원실 회계담당자 등을 강제구인하는 방안은 일단 보류했지만,실제 출석 여부는 민주당의 당론과 상관없이 개별 의원의 판단에 맡겨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각 의원실에 조사 협조 여부를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 대한 정치권의 반발이 워낙 거센 탓에 예상보다 시간은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여론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다 명분도 뚜렷하다는 점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할 수사라며 전의를 불태우는 분위기다.
다만 수사팀 주변에서는 “단시일내 수사를 끝내겠다”는 이귀남 법무장관의 공언과는 달리 정치권과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한동안 이어질지도 모르겠다는 목소리는 조금식 새어나오고 있다.
청목회 수사의 샅바싸움에서 밀린 정치권은 ‘대포폰 의혹’의 재수사 요구로 맞불을 놓으면서 전선을 확대해나갈 것으로 보이지만,검찰은 의혹을 입증할 새 증거가 추가되지 않은 이상 재수사가 불가하다고 버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권이 국정조사나 특검까지 주장하고 있는데다 여권 일각에서도 재수사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여론의 향배에 따라 결론이 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가운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C&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2라운드’ 수사에 본격 돌입하고,서울중앙지검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소환을 서두르면서 ‘사정정국’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일 임병석 C&그룹 회장을 기소한 중수부는 당분간 비자금 흐름을 추적하며 확실한 물증을 잡을 때까지는 섣불리 로비 의혹으로 표적을 이동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상황에 따라서는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앙지검은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에 머물고 있는 천 회장을 입국시키기 위한 물밑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 늦어도 이달 안에는 입국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수사팀은 ‘살아있는 권력’으로 불리는 천 회장이 입국하는대로 구속수사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이 이런 검찰에 행보에 어떤 평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서울서부지검이 맡고 있는 한화·태광그룹의 비자금 의혹 수사는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지만,한화그룹 수사의 경우 거듭된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든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검의 한 간부는 “다음주부터 재경지검들과 중수부 수사가 본격적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바빠질 것”이라며 “조사대상인 정치권과의 일부 마찰은 불가피하겠지만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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