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막내 여동생 만나려니 가슴이 먹먹해요”

“홀로 남은 막내 여동생 만나려니 가슴이 먹먹해요”

입력 2013-09-16 00:00
수정 2013-09-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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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만의 이산가족 상봉 울산 이근수 할아버지 눈물 글썽

“세월이 왜 이렇게 흘렀을까요. 기쁘기보다는 짠한 마음이 앞섭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오는 25∼30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최종 포함된 이근수(83·울산 중구) 할아버지는 16일 “이북의 여동생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라고 말했다.

전남 고흥이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때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부모님을 따라 함경남도 북청군 속후면 서호리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18살의 나이로 고등학교에 다니던 1948년 어느 날 학교에서 공부하던 도중 민청(북조선민주청년동맹)에 끌려갔다.

가족을 본 것은 등교하려고 집을 나서던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2남 2녀 중 장남인 그는 5살 어린 막내 여동생이 등교하는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오빠 잘 다녀와”라고 말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후 2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인민군이 돼 전쟁에 참여했다.

1953년 강원도 양양의 한 빈집에서 자던 그는 국군에게 발각돼 포로가 됐다.

부산 서면의 포로수용소를 거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던 그는 이승만 정권의 반공포로 특별사면 때 풀려났다.

한국의 한 가정에서 따뜻한 대접을 받았던 그는 한국사회에 감명해 한국군이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인민군이었던 전력이 걸림돌이었다.

그 때문에 다시는 인민군의 편에 서지 않겠다는 혈서를 세 번 쓰고 나서야 국군에 입대할 수 있었고 군 생활을 인정받아 장교까지 지내고 제대했다.

그동안 이북 가족 중 어머니, 여동생, 남동생이 모두 사망하고 어린 막내 여동생만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제대 후 1974년 4월에 울산에 정착, 지금의 아내를 만나 목수 일을 하면서 4형제를 키웠다.

그는 “지난 평생 항상 이북에 있던 가족 생각뿐이었다. 막내 여동생을 만나면 어머니와 다른 동생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꼭 물어보고 싶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금강산에 혼자 가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그는 “내 자식에게 고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데 규정상 안 된다고 하니 너무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동생을 만나면 얼굴을 못 알아볼까 걱정이 돼 잠이 안 온다”라며 65년 만의 만남을 기대했다.

할아버지는 여동생을 만나면 줄 선물로 자신이 40년 전쯤 샀던 생애 첫 양복과 두 번째 양복, 아내가 입던 옷 5∼6벌을 준비했다.

그는 “내 채취를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내 양복을 준비했고, 혹시 여동생 몸에 맞을면 주려고 아내의 옷도 넣었다”라고 말했다.

울산에서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자 최종 명단에 이 할아버지를 비롯한 김재일 할아버지, 오정자(90·울산 동구) 할머니 등 3명만 포함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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