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유족, 정부에 진상조사 청원서 첫 제출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응우옌티탄(마이크 쥔 사람)이 4일 청와대 앞에서 한국 정부의 진상 조사와 입장 표명, 피해 회복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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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 응우옌티탄(62)과 응우옌티탄(59·동명이인)은 4일 103명의 피해자를 대표해 청와대를 찾았다. 이들은 피해 진상조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공식입장 표명, 피해 회복을 요청하며 피해자들이 서명한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와 유족이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진상조사 등을 요구하는 문서를 제출한 건 처음이다.
응우옌티탄은 기자회견에서 “8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지만 그날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해 한순간도 잊지 못한다”며 “제 온몸의 진실을 다 짜내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 열렸던 시민평화법정에서 모든 걸 증언했고, 베트남에 돌아가 한국 정부의 응답을 기다렸으나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면서 “1년 동안 실망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응우옌티탄 등 많은 피해자들은 지난해 4월 시민단체의 주최로 한국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참석해 한국군의 살인, 강간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이 법정은 대한민국 정부를 피고로 한 모의재판이었다. 주심을 맡았던 김영란 전 대법관 등 재판부 3인은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전쟁범죄의 성격을 띤다”며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선고했다.
또 다른 피해마을 하미에서 온 응우옌티탄은 “우리 마을에 설치된 학살 피해자 135명 위령비 뒤에는 한국군이 저질렀던 범죄 사실이 낱낱이 기록돼 있었는데, 2000년 한국 정부의 압박으로 이 비문을 큰 대리석으로 가렸다”고 주장했다.
이날 청와대에 제출한 청원서에는 103명의 피해 증언록과 서명이 담겼다.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는 ‘베트남 정부가 사과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지만, 그 어떤 한국 공무원도 우리에게 찾아와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일본 식민지배 당시 불법 행위에 책임을 요구하는 입장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도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피해자 서명 운동은 한국군이 파견됐던 중부 5개성 가운데 2개성 16개 마을에서만 진행됐다. 다른 지역의 피해자들도 한국 시민단체에 청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2019-04-0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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