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봉인됐던 기억/전경하 논설위원

[길섶에서] 봉인됐던 기억/전경하 논설위원

전경하 기자
전경하 기자
입력 2020-03-05 21:58
수정 2020-03-06 01:5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오래전 남동생을 날벼락처럼 잃은 기억을 덮었다. 무심한 듯 소식 끊고 어디선가 잘 살고 있는 것처럼 여겼다. 사고 당시 만삭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를 위한 방어였다. 그러면 덜 슬프고,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망상이었다. 그렇게 눌렀던 슬픔은 예기치 않았던 일들에 비집고 올라와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얼마 전 누군가 불쑥 동생 안부를 물어 왔다. 고등학교 친구라며 소식이 끊겼는데 뭘 하고 있냐고 물었다. 침묵이 흐른 뒤 대답하면서 무릎이 계속 꺾였다. 잘못했구나. 동생이 다양한 세상을 살았는데 나와 가족은 하나의 세상을 잊어버렸다는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왔다.

세상은 참으로 얄궂다. 후배가 비슷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부모, 부모 앞에서 입술을 깨물며 슬픔을 삼킬 가족들. 지인들이 문득문득 느낄 허망함이 가족들은 감사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처참하다.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당사자의 억울함.

떠난 자에게 소중한 하루를 눈이 부시게 잘 살아야 한다고 이성은 되뇌는데 마음은 계속 허망해한다. 그래서 못난 사람이다. 한때 같이했음을 담담히 이야기할 시간은 올까.

lark3@seoul.co.kr

2020-03-06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새벽배송 금지’ 제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새벽 배송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민생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반발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1.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
2. 새벽배송을 유지해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