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보안관리까지 영역 확대’준비된 CEO’ 부상
”미국 기업에서 CEO(최고경영자)가 되려면 반드시 CFO(최고재무책임자)를 거쳐야 한다.”미국 재계에서 기업의 수장(首長)은 영업이나 기술만큼이나 재무적 감각과 전략적 사고를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CFO에서 CEO로 등극한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대표적 복합기업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UTX) CEO 그레고리 하예스, 오라클 CEO 사프라 캣츠, 북미 최대 보험사 스테이트 팜의 CEO 마이클 팁소스 등은 모두 CFO 출신이다.
최근 퇴임한 존 리시톤 전 롤스로이스 CEO는 자동차 업계에서 오랫동안 재무를 담당했던 능력을 인정받은 케이스다.
펩시콜라 제조업체 펩시코의 여성 CEO 인드라 누이도 지난 2000년 CFO를 맡으면서 재무개선과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해 그 성과를 인정받아 2006년 CEO에 올랐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 구글이 모건스탠리에서 스카우트한 CFO 루스 포랫은 새로 출범한 지주회사 알파벳 CFO까지 겸하면서 차기 구글 CEO에 한발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미국 재계에서 CFO의 몸값 상승은 지난 2002년 기업회계 감사 기준인 ‘사베인-옥슬리법’을 개정하면서 회계 부정이나 부패 등이 발생했을 때 CEO 책임을 대폭 강화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이 법에 따라 재무제표에 CEO와 함께 CFO의 서명이 필수조건이 되면서 CFO의 인지도와 위상이 급상승했다.
미국의 유명 헤드헨팅 업체 크리스트콜더의 피터 크리스티 회장은 30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CFO는 과거 ‘회계 사무원’이란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회사의 재정책임자”라고 말했다.
이후 CFO가 CEO의 ‘최측근’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상대적으로 COO(최고운영책임자)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한때 회사의 중요 업무를 챙기며 CEO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던 COO의 존재감이 갈수록 사라진 것이다. 실제로 맥도널드·시만텍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은 COO직을 잇따라 없애고 있다.
최근 능동적인 주식 투자자들과 사모펀드 관계자들이 회사 재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트렌드도 CFO의 영향력을 한껏 올려놓았다.
CFO는 과거 ‘숫자에만 익숙한’ 재무 책임자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공급망 관리와 리스크 관리, 데이터 보안 등으로 영역을 끊임없이 확대해왔다.
트위터의 차기 CEO 후보 중 한 명인 앤서니 노토 CFO는 최근 재무책임자와 걸맞지 않는 마케팅 업무까지 떠맡았다.
헤드헌팅 업체 하이드릭&스트러글스의 제레미 핸슨 대표는 “IT(정보기술) 분야와 데이터 보안 영역이 CFO 수중 아래 놓인 것은 더 이상 이례적인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고객 데이터 보안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 결정 등에 필요한 분석자료를 활용하는 것도 CFO의 몫이 됐다.
하이드릭&스트러글스가 2008년 이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회사 운영·전략·관리 등 비재무적 책임자들이 CEO로 승진하기 전에 CFO로서 입지를 다져온 것으로 조사됐다.
노스웨스트 벤처 파트너스의 서지오 몬살브 대표는 “내가 관계하고 있는 회사들은 CFO들에게 더욱 많은 권한과 책임을 주고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돈과 정보를 다루는 직책이 바로 CFO”라고 했다.
한편, CFO의 위상은 연봉 인상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S&P 500지수 구성 기업 CFO의 지난해 보수 인상률(평균치)은 13.9%였으며, 보수는 380만 달러로 늘어났다.
반면 대기업 CEO의 보수는 6.9% 성장에 그쳤다. 물론 보수는 CFO보다는 많은 1천220만 달러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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