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길 외워도 무용지물…”우버가 ‘지식’에 대한 갈망을 말려버렸다”
영국 런던의 명물인 검은색 고급 택시, 즉 블랙캡(black cab)도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맥을 추지 못했다.우버(Uber)로 대표되는 차량 공유 서비스가 전통의 상징을 조금씩 몰아내고 런던 거리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런던에서 가장 큰 블랙캡 기사 교습소인 ‘날리지 포인트’(Knowledge Point)가 30년 역사를 마감하고 내달 중순 문을 닫는다고 최근 보도했다.
온라인 수강 등으로 명맥은 이어가지만 예전같은 물리적 공간의 학원은 없어진다.
학원 측은 런던 시내 땅값이 오른 탓에 더는 버틸 수 없어서라고 밝혔지만, 수익을 내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화해온 사업 환경도 한몫했다.
영국에서는 통상 실업률이 높을 때 블랙캡 기사 지원자 숫자가 늘었다.
지난 7월 2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영국 실업률을 고려하면 블랙캡 기사 학원이 호황을 맞아야 하는 시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학원 원장인 맬컴 린스키는 “평균적으로 한해 신규 수강생 350명을 맞이했는데 올해는 200명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치명타는 우버 등 전혀 다른 양태를 지닌 경쟁자들의 등장이었다.
이미 대중화된 위성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우버나 다른 택시 기사들은 애써 공들여 도로를 암기할 필요가 없다.
‘지식’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니 기사는 시간과 돈을 아낀다.
굳이 블랙캡 기사와 같은 고급 인력이 없어도 되는 택시 회사들은 비용이나 가격 경쟁력에서 더 유리해진다.
학원 관계자도 “지금은 시간과 돈을 들여 블랙캡 기사가 되기보다 우버 기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더 많다”고 인정했다.
런던에서 블랙캡 운전석에 앉는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꽤 컸다.
3년 이상의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2만5천 개에 달하는 런던 시내 도로와 주요 명소, 호텔, 지름길을 모두 외워 최종 시험을 통과했다는 뜻이다.
10명 중 7명이 중도 탈락하는 과정을 버틸 만큼 성실하고 명민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블랙캡 업계가 ‘지식’(knowledge)이라 부르며 자랑거리로 내세웠던 ‘런던 도로에 대한 완벽한 숙지’는 이제 오히려 블랙캡의 변화를 막는 족쇄가 됐다.
린스키 원장은 “우버에서 긴 시간 일하다가 지쳐서 온 수강생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현장을 찾았을 때 40명이 들어가는 학원 교실엔 10명 남짓한 수강생이 있을 뿐이었다고 FT는 전했다.
이코노미스트 자료에 따르면 런던의 블랙캡 숫자는 2005년 이래 2만여 대 수준에서 큰 변동이 없었지만 우버 등을 포함한 기타 택시는 10년 전 6만 대에서 8만 대 이상으로 늘어났다.
FT는 “우버가 ‘지식’에 대한 갈망을 말려버렸다”고 촌평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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