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주인 되는’ 삼봉의 정신 살려야지요
“우리 국민은 지구 상의 그 어느 민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지도자들만 제대로 서면 세계를 이끌어가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쓰다가 그 꿈을 다 펴지 못하고 사라져간 삼봉의 정신이 오늘 우리 사회와 지도층의 가슴 속에 되살아나야 합니다.”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가 조선의 국가 경영 체계를 확립한 정도전의 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박봉규(61) 건국대 석좌 교수가 이 같은 요지를 담은 책 ‘광인 정도전’(아이콘북스)을 펴냈다. ‘정도전 조선 최고의 사상범’에 이어 2년 만에 펴낸 정도전 연구서다. “백성에 미친 남자라는 뜻에서 광인(狂人)이란 말을 붙였습니다. 민생에 허덕이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진실한 인생 앞에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박 교수는 조선을 대표하는 경세가(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자 민본 정치인으로 다산(茶山) 정약용과 함께 삼봉(三峰) 정도전을 오래전부터 존경해 왔다. 하지만 다산이 일찍부터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고 존경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삼봉이 왜곡된 평가에 묻혀 있는 사실이 안타까워 40대 때부터 그의 사상과 업적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졌다 한다.
“흔히 삼봉은 신권(臣權)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신권과 왕권의 대립을 연상시키는데, 그가 주장하는 신권이란 결국 민권입니다. 신권은 민권을 대변하는 하나의 도구로 봐야 합니다. 왕은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되기도 하니, 관리들 가운데 기량과 자질이 출중한 사람이 재상을 맡아 왕과 협의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자는 것이지요.” 왕에 대한 견제와 권력의 균형을 추구하자는 게 삼봉의 사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론을 겸비한 실천적 혁명가 정도전의 경세론은 고스란히 조선의 문물과 제도 속에 녹아내려 500년 통치의 반석이 됐습니다. 조선의 정치 및 헌법 체계는 그의 ‘조선 경국전’을 따랐고, 경제 체제는 고려말 그가 주도해 만든 과전법의 틀을 지켰습니다. 또 ‘불씨잡변’을 저술해 불교를 비판함으로써 이후 조선조 유가들의 불교에 대한 태도를 결정지었습니다.”
정도전은 또한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궁궐, 종묘, 사직, 관청, 시장, 도로 등 도시 계획을 총지휘하고 작명까지 했다. 하지만 이방원과 갈등을 빚다 역적으로 몰려 살해된 그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다.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아 그렇지! 개국 초에 이 건물들에 경복궁, 그리고 근정전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인 사람이 정도전이 아니었던가’라는 데 생각이 미쳐서야 그는 무덤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가 죽은 지 467년 만이었습니다.”
고려 말은 남의 토지를 빼앗고 양민을 노비로 만드는 등 권세가들의 횡포가 극심한 시기였다. 한 사람이 경작하는 토지의 주인이 많을 경우 7~8명이나 돼 소작인들이 소출의 8~9할을 세금으로 내는 등 사회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 “오늘날에도 그때만큼 심한 건 아니지만 사회 양극화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제대로 못 먹으면 사회 통합, 사회 발전이 안 됩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삼봉의 사상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저자는 경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숭실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지난 30여년간 경제 부처에서 근무한 뒤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등 산하 기관장을 지냈다. 현재 인성교육 범국민실천연합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에서 공학도들을 대상으로 경제 정책을 강의하고 있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2014-03-01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