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xxx야” 회의 때마다 욕세례…파견·도급직 아빠들의 멍든 가슴
간접고용 근로자는 유령이다. 민간기업은 물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대학, 종교단체에까지 만연해 있지만 당국은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갑질 논란’에 불을 지핀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 분신 경비원과 서울 광화문 대형 전광판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케이블TV 씨앤앰 노동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드라마 ‘미생’의 영향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간접고용 근로자들은 말한다. “장그래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꿈이라도 있었지만 우리들은….” 서울신문은 실태 조사 및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간접고용이 일상화된 노동시장의 ‘민낯’을 고발하는 <‘또 하나의 미생’ 간접고용>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72% “일상적 언어폭력 시달려”
간접고용 노동자 10명 중 7명은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중 위협 혹은 굴욕적 행동을 당한다는 이들도 10명 중 6명을 웃돌았다. 일상화된 고용불안과 정신적·육체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을 뜻하는 ‘미생’(未生)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9일 서울신문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12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지난 1개월간 업무수행 중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가’란 질문에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72.1%였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1년 경제활동인구 5만명을 대상으로 한 근로환경조사에서 같은 질문에 ‘있다’고 답한 비율(4.4%)의 16배에 이른다.
●68% “굴욕적 행동 경험 있다”
또한 ‘위협 또는 굴욕적 행동 경험 여부’에 대해 67.6%, ‘원하지 않는 성적 관심 경험 여부’에 대해서는 17.9%가 ‘있다’고 응답했다. 2011년 공단 조사에서 같은 질문에 각각 1.3%와 0.9%만 ‘있다’고 응답한 것과 비교하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험 비율이 각각 52배, 20배 이상 높은 셈이다. SK브로드밴드 설치기사 김모(43)씨는 “원청 관리자들이 욕설은 기본이고 벌 차원에서 출퇴근을 조절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명확한 갑을 관계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언어 및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은 것 같다”면서 “감정노동적 성격이 큰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어 적절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용어 클릭]
■파견 근로자가 파견사업주와 고용 계약을 맺고 유지한 상태에서 사용사업주의 지휘, 명령을 받아 근로에 종사하는 유형.
■도급(용역) 원청업체와 특정 업무 완성을 약정한 용역(하도급)업체가 직접고용한 근로자를 직접 지휘해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유형.
■사내하도급 도급계약을 맺은 용역업체가 원청업체 사업장 내에서 이뤄지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유형.
■사외하도급 도급계약을 맺은 용역업체가 원청업체 사업장 밖에서 이뤄지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유형.
■특수고용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 기사, 간병인 등 원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어 자영업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청업체에 종속된 유형.
“일상이 타박”… 간접고용 노동자 절반 이상 우울·불안증세
“하루하루가 타박이에요. 인간 취급을 안 하는 거 같아요. 50대 동료 한분이 허리가 아파서 며칠 만에 출근했는데 30대 관리자가 ‘다음에 또 이러면 그만둘 생각을 하라’며 몰아세우는 거예요. 지켜보는 우리도 천불이 나는데 그분은 연신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하시더라고요.”(경기 시화반월공단 20대 간접고용 노동자)


불면증을 겪는 간접고용 노동자도 55.9%에 달했다. 이 가운데 65.7%가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2011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한 ‘근로환경조사’에서는 1.6%만 우울증을 호소했다.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응답 역시 2.7%에 그쳤다. 일상적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위원은 “간접고용 노동자는 늘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린다”며 “불투명한 미래와 궁핍한 생활이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스트레스 수준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라며 “다만 정신질환이 있다거나 자살 위험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요통(63.9%), 어깨·목·팔 등의 근육통(88.6%), 두통, 눈의 피로(78.3%), 심혈관 질환(18.1%) 등의 육체적인 문제보다는 정신 피로(89.7%)를 호소한 응답자가 많았다.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정도도 심각했다.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질문에 85.1%가 ‘그렇다’고 답했다. 2011년 공단의 근로환경조사에서는 26.1%가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간접고용 노동자 3명 가운데 1명(30.4%)은 ‘지난해 업무 중 당한 부상으로 4일 이상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지난 2주일간 즐겁고 기분이 좋았다’는 항목에 부정적으로 답변한 이들은 73.1%였다. 또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했다’는 항목에도 73.4%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나의 일상은 흥미로운 것’이라는 항목에서는 ‘그런 적 없다’(43%)는 답이 가장 많았고, ‘나는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났다’는 항목에서 ‘그런 적 없다’(50.9%)가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 또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방증이다. LG유플러스 설치기사 최모(46)씨는 “명절에 가족끼리 식사하고 있는 고객의 집을 방문해 인터넷 설치를 할 때면 ‘나는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도 못하고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고객과의 약속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겨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도 컸다. 특히 관리자의 비인격적인 대우가 문제였다. ‘직속상관이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는가’라는 물음에 ‘아니요’라는 응답이 73.4%였다. ‘상사가 도와주고 지지해 준다’는 항목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이 65.5%였다. 다만 ‘동료는 도와주고 지지해 준다’ 항목에선 긍정적인 답변이 50%였다. 숭실대 청소노동자 장보아(61)씨는 “청소반장이 부당하게 용모를 지적하는 등의 행태를 보였을 때 반박을 하면 말대꾸한다고 몰아세워 소통할 방법이 없다”면서 “관리자와의 갈등으로 결국 사직서를 제출한 동료도 많다”고 밝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은 결국 술과 담배였다. 설문에 응한 간접고용 노동자 가운데 62.7%가 흡연자로 조사됐다. ‘일주일에 2~3회 이상 술을 마신다’는 응답자가 27.1%로 가장 많았고 ‘4회 이상 마신다’는 이들도 19.9%에 달했다. 1회 음주량도 ‘소주 10잔 이상 마신다’고 답한 이들이 31.5%로 가장 많았다. 반면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한 근로환경조사에서 흡연자는 33.2%로 간접고용 노동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또 일주일에 4회 이상 음주를 한다는 응답은 4.9%, 2~3회라는 응답은 21.4%였다.
한 연구위원은 “주로 서비스산업 노동자가 설문에 참여해 감정노동 수치가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비해 현격히 높게 나온 것 같다”면서 “상당수 고객이 이들을 비전문직으로 하찮게 여기고 있어 열악한 상황이 더 심각하게 나타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설문조사 어떻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도움으로 주로 서비스업계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1241명(정규직 29.3%, 비정규직 70.7%)을 대상으로 지난달 8~22일 인터넷 조사 사이트 ‘서베이몽키’를 통해 실시했다. 간접고용 노동 실태를 국내 평균 노동 실태와 비교하기 위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3년마다 경제활동인구 5만여명을 대상으로 벌이는 근로환경조사를 바탕으로 문항을 설계했다.
고용 보장 꿈도 못 꾸는 ‘현대판 노예’…국내 153만명 ‘눈물’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간접고용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다는 지적이 높은 가운데 9일 서울 중구 명동 중앙우체국 광고판 위에서 LG유플러스 전남서광주고객센터의 강세웅씨와 SK브로드밴드 인천계양행복센터의 장연의씨가 ‘다단계 하도급 근절’ 등을 요구하며 31일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9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따르면 통계청의 2014년 8월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 국내 간접고용(파견, 용역, 호출) 근로자는 153만여명으로 추산된다. 간접고용은 법적 용어가 아니다. 어느 선까지 간접고용으로 볼 것인지 의견도 분분하다. 넓은 의미로 보면 ‘근로자와 직접 계약을 하지 않고 제3자에게 고용된 근로자를 사용하는 고용 형태’로 해석되지만 법적으로는 ‘파견’과 ‘용역’(도급)만 해당한다. 이 때문에 독립도급(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보험 설계사 등 도급계약으로 생활하는 개인사업자·60만 5000여명)도 간접고용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213만여명에 이른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대기업 제조 협력업체의 불법 파견은 통계청의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아 간접고용 노동자는 더 많을 것”이라면서 “합치면 대략 300만~40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간접고용이 확산된 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다. 이전까지 근로기준법(제9조 중간 착취 배제)은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했지만 1997년 파견근로자보호법이 제정되면서 파견근로가 합법화됐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불법 파견을 양성화하고 보호하는 한편 출산과 같이 일시적 결원이 생길 경우 파견근로자가 필요하다는 기업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합법화로 인해 간접고용의 물꼬가 터졌다. 유료 직업소개소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등 정부가 직업안정법 규제를 풀면서 간접고용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재계는 불가피한 측면이 컸다고 주장한다.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처음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뽑는 데 주력했지만 2007년 6월 30일 기간제근로자 총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등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간접고용으로 눈을 돌렸다. 직접고용을 줄이고 특정 업무를 외주화하거나 파견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필요한 인력을 메운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용역업체 노동자는 79만 8000여명으로 2000년(44만 4000여명)에 비해 79.7%나 증가했다.
정부도 공공기관 외주화에 앞장섰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이 지난해 5월 발표한 ‘간접고용의 실태와 개선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기능직 등 하위직 공무원을 중심으로 중앙정부부처 공무원 2만 2400여명, 지자체 공무원 4만 9000여명을 감축하면서 빈자리에 용역업체를 들이거나 민간위탁을 진행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2011년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통해 민간위탁 등 간접고용을 촉진했다. 그 결과 2012년 공공부문 파견, 용역 근로자는 11만 641명으로 2011년(9만 9643명)보다 11% 증가했다.
이남신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정부가 직업안정법 등이 규제를 풀어주는 것에 발맞춰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외주화를 선택하면서 ‘풍선효과’처럼 간접고용이 증가했다”면서 “초기에는 청소나 경비, 시설관리에 그쳤지만 점차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같은 대기업과 지방 공단의 중소 영세 기업까지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간접고용이 폭넓게 확산됐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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