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빛 발견] 저어 ‘주다’?/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저어 ‘주다’?/이경우 어문팀장

이경우 기자
입력 2017-10-25 22:44
수정 2017-11-30 15:5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이경우 어문팀장
이경우 어문팀장
뜻이 변한 것일까. 요리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저어 주다’에 익숙하다. “주걱으로 저어 주면 됩니다”라고 한다. “저으면 됩니다”라고는 잘 하지 않는다. ‘주다’를 넣어야 맛있게 전달한다고 믿는 듯하다. 요리 방법을 나열한 글들도 비슷하다.

‘저어 주어 달걀을 풀어 준다.’ ‘밀가루를 넣어 졸여 준다.’ ‘버터를 두르고 부쳐 준다.’ ‘우유를 부어 갈아 준다.’

좀 과하다 싶기도 하다. 말맛도 떨어뜨리는 것 같다. 지나치게 양념을 쳤다는 느낌을 준다. ‘주다’는 기본의미가 ‘건네거나 베풀다’는 말이다. 보조동사로는 동사 뒤에서 ‘-어 주다’ 형태로 쓰인다. ‘아내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녀에게 시를 읽어 주었다.’ 여기서 ‘주다’들은 건네거나 도왔다는 의미를 전한다. 하지만 요리와 관련한 문장들에서는 그러하지 않다. 무엇을 건네야 할 대상이 없이 괜스럽다.

요리의 표현들에서만 ‘주다’의 쓰임새가 달라진 건 아니다. 일상의 다른 곳에서도 ‘주다’는 빈번하게 본래의 영역을 벗어난다. ‘연고를 발라 주고’, ‘먹는 양을 늘려 주는 게 좋다’ 같은 말들이 흔하게 쓰인다. ‘연고를 바르고’, ‘양을 늘리고’라고 해도 충분한데, 굳이 ‘주다’를 넣는다.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흐릿하고 부족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주걱으로 저으면’보다 ‘주걱으로 저어 주면’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남는 말로 다가올 때가 많다.

wlee@seoul.co.kr
2017-10-26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10월10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할까요?
오는 10월 개천절(3일)과 추석(6일), 한글날(9일)이 있는 기간에 10일(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시 열흘간의 황금연휴가 가능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는 이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다음 기사를 읽어보고 황금연휴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1. 10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한다.
2. 10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필요없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