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빛 발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이경우 어문팀장

입력 2017-12-06 20:26
수정 2017-12-0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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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몰아낸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허다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결국 좋은 것이 외면당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6세기 영국의 금융가 토머스 그레셤이 내놓은 ‘그레셤의 법칙’을 대표하는 말이었다.

그레셤의 법칙은 나쁜 재료로 만든 화폐가 좋은 재료로 만든 화폐를 몰아내는 현상이다. 즉 재료의 가치가 큰 것은 사라지고, 작은 것이 유통되는 일을 뜻한다.

은으로 만든 돈과 금으로 만든 돈이 나왔다고 하자. 같은 1만원짜리다.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돈 금화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장롱 깊숙이 넣어 두고 귀중한 재물로 여긴다. 대부분 은으로 만든 돈 은화를 사용한다. 시장에서 금화는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은화가 금화를 몰아낸 것이다. 이때 은화는 ‘악화’, 재료의 가치가 더 큰 금화는 ‘양화’가 된다. 그레셤은 이를 두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말했다.

누군가 번역을 이렇게 어렵게 했고, 지금도 유통된다. 이것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격이다. 쉽게 풀면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쫓아낸다’가 된다. 한데 ‘악화’(惡貨), ‘양화’(良貨), ‘구축’(驅逐) 같은 단어를 써서 어려운 말이 돼 버렸다. ‘악화가 양화를 만든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애초 ‘구축’이라도 쉬운 말로 번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구축’은 ‘쫓아내다’, ‘몰아내다’다.

wlee@seoul.co.kr
2017-12-0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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